지난달 테슬라가 주력 판매 차량인 모델 Y와 모델 3의 가격을 큰 폭으로 인하하면서 현대차·기아가 국내 전기차 시장을 사수하는데 비상이 걸렸다. 게다가 지난해 국내에 진출한 BYD를 포함한 중국 전기차 제조사들도 올해 신차를 연이어 출시할 예정이라 현대차·기아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16일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현대차·기아의 지난해 전기차(승용·상용·수소 전기 포함) 합산 판매량은 12만1010대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판매량인 6만9738대보다 73.5% 증가한 수치로 현대차·기아가 전기차 판매를 시작한 이후 가장 높은 실적이다.
차종별로 보면 현대차는 승용차를 4만6400대, 상용차를 1만3943대 각각 판매했다. 기아는 승용차 5만3085대, 상용차 7582대를 각각 팔았다.
현대차는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아이오닉5가 1만4455대로 단일 모델 중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어 상용차인 포터가 9296대 팔렸고 캐스퍼 일렉트릭(8856대), 아이오닉9(8208대)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기아는 소형 SUV인 EV3가 2만1252대로 최다 판매 모델이었다. 이어 EV6(9358대), 레이(9276대), EV4(8058대) 등의 판매량이 많았다.
다만 완성차 업계에서는 현대차·기아가 전체 판매량에서는 높은 성장세를 보였지만, 테슬라의 돌풍에 밀려 국내 시장에서 기대했던 판매 실적을 내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테슬라는 지난해 5만9916대의 승용차를 국내에서 판매했다. 테슬라는 352대가 팔린 사이버트럭까지 승용 모델로 분류된다. 국내 전기 승용차 시장에서 테슬라의 판매량이 현대차와 기아를 앞선 것이다. 특히 모델 Y의 경우 지난해 부분변경 모델인 주니퍼의 출시 영향으로 5만398대의 판매 실적을 올렸다.
올해 테슬라의 판매량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31일 단행한 가격 인하를 통해 전기차 수요가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코리아는 모델 Y 프리미엄 롱레인지 AWD 모델을 기존 6314만원에서 5999만원으로 315만원, 모델 Y 프리미엄 RWD 모델은 기존 5299만원에서 4999만원으로 300만원 낮췄다. 모델 3 퍼포먼스 AWD 모델 가격은 기존 6939만원에서 5999만원으로 무려 940만원 할인했다.
올해 확정된 국고보조금까지 합하면 테슬라의 가격은 더 낮아진다. 테슬라 모델 3의 올해 국고보조금은 200만원이다. 아직 지자체 보조금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수준(20만원)으로 계산하면 220여만원을 보조금으로 받게 된다. 모델 Y 프리미엄 RWD의 경우 국고보조금 170만원에 지자체 보조금까지 합산하면 4000만원 후반대에 살 수 있다. 여기에 내연기관 차량에서 전기차로 전환하면 100만원의 추가 지원도 받는다.
이 때문에 수입차 업계에서는 테슬라가 매년 초 확정되는 전기차 보조금 산정에 앞서 조기에 전기차 구매자를 잡기 위해 기습적인 가격 인하를 결정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기아는 중국 전기차 업체들과도 힘든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BYD는 지난해 국내 시장에 진출해 소형 SUV 아토3와 중형 세단 씰, 중형 SUV 씨라이언7 등 3종의 모델을 출시했다. 여기에 올해는 소형 해치백 돌핀도 출시할 예정이다.
올해 BYD의 전기차 국고보조금은 아토3 126만원, 돌핀 109만~132만원, 씰 169만원, 씨라이언7 152만원으로 정해졌다. 아직 지자체 보조금까지 확정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서울시 기준 지자체 보조금이 20만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 아토3를 서울에서 살 경우 가격은 3000만원대 초반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돌핀의 가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가성비를 내세우는 모델인 점을 고려하면 2000만원대 초반의 가격에 출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올해는 중국 지리자동차의 고급 브랜드인 지커도 국내에서 판매를 시작할 계획이다. 중형 전기 SUV 7X가 국내에 상륙하는 첫 번째 모델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차·기아는 주력 모델의 가격을 할인해 테슬라와 BYD 등의 공세에 대응하고 있다. 기아 EV3 롱레인지의 경우 국가보조금 555만원과 지자체 보조금, 기아의 할인까지 더하면 3000만원 후반에서 4000만원 초중반에 구매할 수 있다.
아이오닉6의 경우 국고보조금은 570만원이다. 추가로 현대차 자체 할인 프로그램(100~550만원)과 전기차 전환지원금까지 더하면 최대 1220만원을 할인 받게 된다. 아이오닉6 롱레인지 기준 4000만원 중반대에 살 수 있게 된다. 아이오닉5도 4000만원대 중반 수준이 될 전망이다.
아직까지 현대차·기아의 주력 전기차의 가격은 동급의 테슬라 모델보다 저렴하지만, 차이는 1000만원을 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완성차 업계에서는 신규 전기차 구매자를 잡으려면 현대차·기아가 더 공격적인 할인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기아가 전기차 라인업을 더욱 넓힐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대차의 경우 전기차 단일 모델은 아이오닉5와 아이오닉6, 아이오닉9 등 3종이 판매된다. 소형 SUV인 아이오닉3는 구상 단계에 머물러 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올해 현대차가 출시하는 신차 중 대다수는 하이브리드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이라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 BYD 등과 경쟁하는데 더욱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