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7위 한화그룹이 지주사 체제를 재편하며 ‘형제 분리 경영’의 첫 단계를 밟는다. 14일 한화그룹의 지주사 격인 ㈜한화가 방산·조선·에너지·금융 중심의 기존 지주회사와 기계·유통 부문을 떼어낸 신설 지주회사 체제로 ‘인적 분할’을 결정하면서다.
㈜한화는 이날 이사회를 열고 기계·로봇, 유통·레저 등을 아우르는 신설 지주회사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를 설립하는 인적 분할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새 지주회사 산하엔 한화비전, 한화세미텍, 한화모멘텀, 한화로보틱스와 한화갤러리아,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아워홈이 편입된다. 한화 삼남 김동선 부사장이 이끌어왔던 사업들이다.
◇사실상 3남 독립… 어떻게 나눴나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이 그룹 전체의 키를 쥐고 있는 가운데, ㈜한화 아래 장남 김동관 부회장이 방산·우주항공과 조선·해양, 에너지·화학 사업을, 차남 김동원 사장이 금융을, 3남 김동선 부사장이 기계·유통 부분을 각각 이끌고 있다.
한화그룹 지배 구조는 ‘한화에너지→㈜한화→주요 계열사’로 이어진다.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는 ㈜한화의 경영권은 최대 주주 한화에너지(지분 약 23%)와, 김 회장과 아들 3형제(약 33.8%)가 보유하고 있다. 또 3형제는 한화에너지 지분을 80% 보유하고 있다. 오너 일가가 한화에너지와 ㈜한화를 통해 주요 계열사를 경영하는 구조인 셈이다.
인적 분할로 한화그룹은 한화에너지 아래 ㈜한화와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 2개 지주사가 양립하는 구조로 바뀐다. ㈜한화 아래 김동관 부회장과 김동원 사장이 이끄는 12사가,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 아래 김동선 부사장이 경영하는 7사가 있는 구조다. 오는 6월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7월 중 완료될 전망이다.
㈜한화의 주주들은 존속 법인인 ㈜한화와 신설 법인인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 지분을 약 76대 24 비율로 갖게 된다. ㈜한화 1000주를 보유한 사람이라면, ㈜한화 지분 760주,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 지분 240주가 생기는 셈이다.
한화는 인적분할 이유에 대해 “방산부터 백화점까지 서로 다른 업종이 한 바구니에 담겨 있어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디스카운트 현상을 겪어왔다”며 “이를 해소하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반면 재계에서는 “동원그룹이나 최근 효성그룹의 사례처럼, 인적분할 후 지분 맞교환하는 과정을 거쳐 김동선 부사장이 신설 지주를 들고 완전히 독립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차남 김동원 사장도 계열 분리, 독립 경영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금융지주사는 일정 비율의 자회사 지분 보유 의무를 지는 등 규제가 엄격해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다. 이런 점을 감안해 의지가 강한 3남 먼저 분리 절차를 밟은 것으로 알려졌다.
◇각자 영역 강화… ‘전문화’ 목표
실제 김동선 부사장은 최근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아워홈을 8700억원에 인수한 것을 비롯해 신세계푸드 급식 사업부, 고급 리조트 ‘파라스파라 서울’ 인수 등도 주도했다. 그가 맡은 유통·레저 분야의 한화갤러리아, 플라자호텔 등이 수익성이 악화하는 만큼, 돌파구를 찾는 시도란 분석이다.
김 부사장은 3형제가 그룹 사업을 나눠 이끌기로 했을 때, 유통 및 레저 분야 외에 한화비전과 한화로보틱스 같은 로봇·자동화 기업 경영도 맡았다. 두 분야가 이질적이지만 한화비전의 경우 CCTV 분야 글로벌 선두권 기업으로, 새 지주사 체제에서 캐시카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 부사장은 나아가 백화점·호텔·급식(아워홈) 등 서비스 현장에 로봇·자동화·반도체 장비 기술을 접목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한화그룹 내에서는 김동선 부사장의 공격적인 M&A(인수·합병)와 사업 확장 행보가 그룹 내 다른 사업에 영향을 줄까 봐 우려도 컸다”면서 “이번 분할로 형제 간 독립, 책임 경영의 기틀이 잡힐 것”이라고 했다.
☞인적(人的) 분할·물적(物的) 분할
회사가 일부 사업을 떼어내 새 회사를 만들 때 기존 회사 주주가 신설 회사의 주주도 되면 인적 분할, 신설 회사의 지분을 기존 회사가 100% 보유하고 기존 주주는 새 회사 주식을 받지 않으면 물적 분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