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국내 산업계는 업종별로 희비가 엇갈렸다. 자동차와 석유화학 등은 미국의 고율관세 부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조선과 방위산업 등의 업종은 글로벌 수요가 증가하며 호황을 맞았다. 2026년 글로벌 경제를 움직일 주요 이슈에 대해 짚어보고 이에 따른 업종별 영향을 전망해 본다. [편집자주]
공군기지에서 조종사가 탄 전투기가 이륙하면, 다른 기지에서 무인기가 발사된다. 조종사는 무인기 근처로 날아가 시스템을 연결한 뒤 통제하기 시작한다. 무인기는 조종사 대신 적진 깊숙이 침투해 정찰·감시·타격 등 다양한 임무를 정밀하게 수행한다. 먼 거리에서 이를 지켜본 조종사는 안전하게 기지로 돌아온다.
다목적 무인기(AAP)를 개발 중인 한국항공우주(KAI)가 그리는 한국형 유무인 복합체계(MUM-T)의 한 장면이다. 강병길 KAI 미래체계연구실장은 8일 “한국의 개발 속도는 현재 선진국보다 3년 정도 늦다”면서 “AAP 개발에 보다 집중해 따라잡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 방산업계가 첨단 무기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고삐를 죄고 있다. 인력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전투 효율은 극대화할 수 있는 첨단 무기를 확보하기 위해 세계 각국도 대규모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지난해까지 전통 무기 체계 수출에 주력했던 한국 방산 업계는 첨단 무기 기술을 빠르게 확보해 탄탄한 장기 성장 구조를 만들고, 세계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계획이다.
◇ 첨단 무기에 돈 몰린다… 국방 예산 늘고 AI 방산 스타트업 투자
올해 글로벌 방산 업계의 최대 화두는 인공지능(AI)과 이를 통한 디지털 전환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는 ‘2026년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망’ 보고서를 통해 “디지털 전환은 더 이상 이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필수”라고 했다. 각국 국방 예산이 자율 무인 시스템, 드론 및 첨단 무기 플랫폼에 집중 투자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딜로이트는 “올해 ‘에이전틱(스스로 판단하고 추론하는) AI’는 시범 프로젝트에서 대규모 배치 단계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실제 미국은 2026년 회계연도 국방 예산으로 사상 최대 규모인 9006억달러(약 1293조원)를 책정했는데, 이 중 16%인 1457억달러(약 209조원)가 연구·개발·시험·평가(RDT&E)에 편성됐다. 전년보다 350억달러(약 50조원) 늘어난 수준이다. 미국 국방 AI 기업 옵비언트는 “차세대 기술 개발에 대한 지출 한도를 상향 조정해 새해 국방부의 현대화 및 신속한 시제품 제작 노력을 지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했다.
서방의 집단 안전 방위 조약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2035년까지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비에 투입하기로 했다. 역시 주된 투자처는 연구·개발(R&D)이다. 미국 싱크탱크 독일마셜펀드(GMF)의 헬리 티르마 클라르 연구원은 “증가하는 지출은 동맹국들이 현대전에서 결정적 우위를 유지하는 첨단 사이버 및 방위 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데 중요한 추진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유럽에서 첨단 무기 기술을 확보한 스타트업에 돈이 몰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글로벌 스타트업 데이터 플랫폼 딜룸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20억달러(약 3조원)가 유럽 AI 방산 스타트업으로 흘러들어갔다. 이는 2024년(11억달러)의 두 배 수준이다. 미국 경제 매체 CNBC는 “끝나지 않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 등으로 인해 각국 정부의 국방 예산이 증액되자, 투자자들이 그 기회를 선점하려 나선 것”이라고 했다.
◇ 韓 방산도 투자 확대… AI 조종사에 첨단 방어 시스템 등 개발
한국 정부와 방산업계도 올해 첨단 무기 R&D에 더욱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방위사업청은 올해 국방 R&D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인 5조8386억원으로 편성했다. 특히 AI가 탑재된 드론과 로봇 기술에 지난해 대비 1.5배 많은 2287억원이 투입된다.
국방 R&D의 무게추가 과거에 비해 민간으로 옮겨가긴 했지만, 여전히 무기 체계 개발은 민간 기업이 단독으로 감당하기엔 위험이 크다.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고 개발 기간도 길기 때문이다. 여기에 군이 신무기의 첫 번째 구매자인 만큼, 정부 예산은 첨단 무기에 대한 국가 전반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가늠자다.
정부의 지원에 국내 주요 방산 기업들의 투자까지 합쳐져 올해 첨단 무기 개발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비행 중 AI 기술로 표적을 감지하고 자폭 드론을 발사해 적을 타격하는 ‘배회형 정밀유도무기(L-PGW)’와 활주로가 100m 안팎으로 짧은 함상·야지 등에서도 이착륙할 수 있는 무인기(GE-STOL)를 개발 중이다.
한화시스템과 현대로템은 드론·미사일 등 적의 위협을 감지하고 요격해 생존성을 높이는 첨단 방어 시스템 ‘능동방호체계(APS)’를 각각 연구하고 있는데, 이는 2027~2028년쯤 개발이 완료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로템은 마하 5(마하1=초속 350m) 속도로 달리는 극초음속 비행체 ‘하이코어’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자동차 엔진 역할을 하는 연소기를 설계·제작·조립한다.
LIG넥스원은 AI로 정찰 정보를 실시간 분석해 대응하고 명령을 내리는 ‘AI 지휘통제·통신시스템(C4I)’과 자율주행에 원격 제어, 정찰·전투·스텔스 기능을 갖춘 무인수상정 ‘해검’ 시리즈를 개발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KAI)는 ‘유무인 복합체계(MUM-T)’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전장 상황을 스스로 인식·분석해 자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AI 조종사 ‘카일럿’부터 AI 조종 능력을 갖춘 KF-21 6세대 전투기, 정찰·감시·타격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다목적 무인기까지 모두 MUM-T라는 이름으로 묶여 구현된다.
이를 뒷받침할 실탄과 시설도 마련됐다. KAI는 신기술·제품 개발에 2023~2027년 1조5000억원, 2028~2033년 3조원을 투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화에어로가 지난해 공개한 기업 가치 제고 계획에 따르면, 2025~2028년에만 총 17조원 투자가 집행된다. LIG넥스원도 4000억원 가까이를 들여 지난해 최첨단 연구개발·시험 설비를 구축했다.
◇ 무기 수출국 진화한 韓… “미래 투자, 장기 성장 수단”
지난해 한국 방산업계는 전 세계적으로 탄약·자주포·전차 등 전통적 무기 체계의 소모와 교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수혜를 봤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와 현대로템의 방산 수출 비중은 2022년 각각 22.3%, 18.3%에서 지난해 58.4%, 70.9%로 급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재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은 주요 무기 수입국에서 주요 무기 수출국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갈수록 심화하는 지정학적 갈등과 폴란드의 잔여 계약 이행, 중동의 대량 수주 기대감 등을 고려하면 향후에도 수주 잔고 증가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첨단 무기는 이제 막 날아오르기 시작한 한국 방산에 추진력을 더해줄 수단이다. 한영수 삼성증권 팀장은 “한국 방산의 약진은 단순히 업황이 호황 국면으로 전환된 것 이상의 구조적 변화로 판단된다”며 “국내 대형 방산 업체들의 투자 활동은 이들의 장기 성장을 지속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국내 대형 방산 업체들은 현재 확보된 현금으로 생산 능력을 확장하고 방산 신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개발비를 충당하고 있다”며 “이러한 투자가 성공할 경우, 산업 내 입지가 개선되고 향후 업황 둔화 시기에도 수익성을 방어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