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우리를 둘러싼 여건이 어려워지고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때, 우리를 지켜줄 가장 큰 버팀목은 바로 깊은 성찰에서 비롯되는 체질 개선”이라며 제품 생산 전 단계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자율주행 등 미래 전략에 대해선 외부에 기대지 않고 인공지능(AI) 관련 기술을 내재화해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현대차그룹은 5일 정 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이 서울 양재 사옥에서 진행한 신년 좌담회 영상을 5일 공개했다. 정 회장과 장재훈 현대차그룹 부회장, 성 김 전략기획담당 사장, 송호성 기아 사장, 이규석 현대모비스 사장이 직접 자리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과 만프레드 하러 연구·개발(R&D) 본부장(사장)은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026년 신년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이날 정 회장은 “2026년은 그동안 우리가 우려하던 위기 요인들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며 “전세계 무역전쟁이 더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경영 환경과 수익성은 악화될 것이고, 경쟁사의 글로벌 시장 침투는 더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해 특정 지역에서 사업이 중단되거나 타격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위기 돌파 수단으로 정 회장은 ▲고객 관점의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 체질개선 ▲본질을 꿰뚫는 명확한 상황인식과 민첩한 의사결정 ▲공급 생태계 동반자에 대한 깊은 관심과 지원 확대 ▲다양한 파트너들과의 과감한 협력으로 생태계 확장 ▲산업과 제품의 새로운 기준 선도 등을 제시했다.

특히 체질 개선을 위한 자기 성찰에 대해 “우리 제품에는 고객의 시각이 충분히 반영됐는지, 제품의 기획이나 개발 과정에서 타협은 없었는지, 또 우리가 자부하는 품질에 대해서 고객 앞에 우리가 과연 떳떳한지, 이러한 질문을 통해서 스스로를 정직하게 돌아보고 개선해 나간다면 현대차그룹은 어떤 위기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명확한 상황 인식과 민첩한 의사 결정을 위해서는 리더들에게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주문했다. 그는 “리더들은 숫자와 자료만 보는 데 머물지 말고 모니터 앞을 벗어나서 현장을 방문하고 또 사람들을 통해서 상황의 본질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빠르고 명확한 의사소통,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민첩한 의사 결정”이라며 “보고는 자기 생각과 결론이 담겨야 하며, 적시 적소에 빠르게 공유돼야 한다”고 했다.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제조업이 산업 전환기에 진입한 데 대해선 “자동차 시장만 보더라도 자율주행이나 소프트웨어 기반 차량 제어, 개인화된 사용자경험(UX)과 같은 제품의 핵심 경쟁력이 AI 능력에 의해 판가름나는 시대가 됐다”며 “현실을 냉정하게 보면 글로벌 선도 기업들은 이미 수백 조 원 단위의 투자로 이 영역에서 우위를 선점했고, 이에 비해 우리가 확보한 역량은 아직 충분치 않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어려운 변화 속에서 산업과 제품의 새로운 기준을 선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늦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다양한 파트너와 긴밀한 협력을 통해 AI가 촉발한 산업 전환기에서 맞서 나아가야 한다”며 “우리는 여전히 물리적 제품의 설계와 제조에 있어서만큼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역량을 가지고 있고, AI의 성능 개선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인 데이터는 이러한 제조 현장과 사용자의 제품 사용 경험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 2026년 신년회에 참석한 주요 경영진. 왼쪽부터 성 김 현대차그룹 사장, 장재훈 현대차그룹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혜인 현대차그룹 부사장, 송호성 기아 사장, 이규석 현대모비스 사장./현대차그룹 제공

최근 현대차그룹 안팎에서 제기되는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전략 위기에 대해서도 경영진이 직접적인 답을 내놨다. 장 부회장은 “SDV, 자율 주행과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는 점을 잘 알고 있고, 고민도 많았다”며 “SDV라는 도전의 영역에서 우리가 쌓아온 것들이 앞으로 우리 그룹이 꿈꾸는 미래를 실현하는 든든한 토대가 될 것이고, 지금도 우리는 완성도를 높이는 단계에 있다”고 했다.

이어 “SDV 기업으로의 전환은 우리 그룹의 생존과 미래가 걸린 일”이라며 “이 목표는 타협할 수 없고 변함없는 방향임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SDV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포티투닷과의 협업 체계는 변함없이 유지하며, SDV 기술이 적용되는 주요 개발 프로젝트 역시 예정대로 추진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정 회장은 그룹의 미래 방향성에 대해 AI 관련 기술을 내재화하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는 “SDV, AI, 미래 모빌리티 등 산업의 변화가 큰 만큼 우리에게는 더 큰 성장의 기회가 열려 있다”며 “이 변화의 파도 속에서 AI 역량을 내재화하지 못한 기업은 생존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AI가 만들어낼 생산성 향상과 지식 창조 능력에는 상한선이 없는데, 이 발전에 한계가 없는 기술을 단순히 외부에서 도입하는 것만으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며 “외부에서 구매할 수 있는 기술은 필연적으로 선도 기술 대비 뒤처진 것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아직 늦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피지컬 AI로 중심이 이동할수록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자동차, 로봇과 같은 ‘움직이는 실체’와 ‘제조 공정’ 데이터의 가치는 희소성을 더해갈 것이며, 이는 빅테크 기업들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우리만의 강력한 무기”라며 “데이터와 자본, 제조 역량을 갖춘 현대차그룹에게 AI는 충분히 승산 있는 게임”이라고 했다.

정 회장은 “당사는 외부 모델을 단순히 튜닝해서 사용하는 수준을 넘어서 AI 원천 기술 자체를 반드시 내재화해야 한다”며 “AI를 단순한 도구로 볼 것이냐 아니면 기업 진화의 원동력으로 삼을 것인가에 미래가 달려있고, 다가올 미래에도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유일한 길은 AI를 외부에서 빌려온 기술이 아닌 조직 내부의 생명력으로 받아들이고 체화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주요 계열사의 올해 경영 목표도 제시됐다. 현대차의 무뇨스 사장은 “유연한 글로벌 생산 전략과 공급망 재구성을 통해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고, 하이브리드-EV-내연기관 등 다양한 파워트레인 라인업, 지역별 고객 맞춤형 제품 전략을 통해 성과를 내고 있다”며 주요 모델 출시와 제네시스 하이브리드 모델 도입, 유럽 및 신흥시장에서의 위상 강화 등을 통해 성장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기아의 송 사장은 “기아는 올해 6% 이상 성장을 목표로 매우 도전적인 계획을 수립했으며, 과감한 도전을 통해 위기 상황을 지속 성장의 모멘텀으로 활용하고, 신규 수요를 적극적으로 발굴해 올해 성장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했다. 성장 동력으로는 목적기반차량(PBV) ‘PV5’와 ‘텔루라이드’, ‘셀토스’ 등 볼륨 신차를 꼽았다. 성장성이 높은 동남아 시장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 신규 판매 법인 설립 등을 통해 글로벌 시장 입지도 확대하기로 했다.

현대모비스의 이 사장은 “현대차그룹의 핵심 부품사로서 새로운 아키텍처를 안정적으로 지원하고 SDV의 양산과 확대 전개에 주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구체적으로 인터페이스 설계를 표준화하고, 오픈소스 생태계에 참여해서 글로벌 SDV 표준 확산에 기여하는 등 SDV 전환을 함께 하는 전략적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