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현지 시각)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동쪽으로 400㎞ 떨어진 산업도시 다란(Dhahran). 이곳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에너지 회사 아람코의 ‘원유 공급 통합 관리 센터(OSPAS)’로 들어서자 초대형 곡면(曲面) 스크린 5개가 수십m 길이로 연결된 내부가 한눈에 펼쳐졌다. 마치 미국 항공우주국(NASA) 관제센터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메마른 사막 위 투박하게 솟은 유전(油田)과 낙타, 히잡과 구트라를 두른 사람들로 대표되는 사우디 이미지와는 180도 다른 광경이었다.

원유 공급 통합 관리 센터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 아람코의 원유 공급 통합 관리 센터(OSPAS) 내부. 5개의 초대형 곡면 스크린에는 유전에서 정제 시설, 선박에 이르는 전 과정을 10만여 개의 AI(인공지능) 센서로 관측한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아람코

OSPAS는 사우디 전역에서 전 세계로 이어지는 원유·가스 등의 흐름을 24시간 통제하는 아람코의 심장부다. 유전, 파이프라인, 정제·터미널 설비에 설치된 AI(인공지능) 기반 센서 10만여 개가 원유가 유전을 출발해 수출 선박 등으로 이동하는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OSPAS의 진가는 위기 때 증명됐다. 2019년 9월 아람코의 최대 석유 탈황·정제 시설 ‘아브카이크’가 드론 공격을 받아 사우디 원유 생산의 절반이 차질을 빚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전 세계가 오일 쇼크 공포에 떨었지만, 아람코는 단 열흘 만에 복구에 성공했다. 아람코 관계자는 “AI가 10만개 센서 상태를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해 복구 우선순위를 짰고, 원유 공급 차질 기간을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아람코가 AI 기업으로 변모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AI를 활용해 원유 생산 예측과 시추 성공률을 높이는 연구를 맡은 아람코의 ‘업스트림 전문 개발센터’에서 원유 시추 시뮬레이션을 하는 모습. /전준범 기자

◇AI로 드론 공격 피해 10일 만에 복구

실제로 아람코는 ‘AI를 핵심에(AI at the core)’라는 비전을 선언하고 고성능 컴퓨팅과 거대언어모델(LLM), 전문인력 육성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아쉬라프 알 가자위 전략·기업개발부문 총괄수석부사장은 “작년 한 해에만 전체 임직원의 10%인 6000여 명에게 LLM과 AI 애플리케이션을 교육했다”며 “93년간 축적된 데이터를 정밀하게 분석해 실무에 적용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대 성과는 시추 비용 절감이다. 과거엔 지진파 분석과 지질학자의 감으로 시추 지점을 추정하는 방식이라 확률이 낮았다. 지금은 AI가 93년치 지진파·탐사 데이터를 재해석해 원유와 가스가 매장된 저류층 스윗 스폿(Sweet spot)을 단번에 찾아내는 확률이 크게 높아졌다. 덕분에 시추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었다. 불필요한 시추가 줄면서 환경오염 물질인 메탄 배출량도 AI 도입 전보다 11% 이상 줄었다. 아람코 관계자는 “AI 투자로 지난해 얻은 성과를 금액으로 환산해보니 20억달러(약 2조9000억원)에 달했다”고 말했다.

◇“AI가 샤힌 프로젝트 성공에도 기여”

아람코의 AI 투자는 사업 다각화 전략과도 맞물린다. 아람코는 원유·가스의 생산과 수출 비중을 낮추기 위해 석유화학 분야를 강화하고 있다. 캐낸 원유를 고부가가치 화학 제품으로 전환하는 다운스트림 투자를 통해 수익성을 극대화한다는 구상이다. 아람코가 한국 자회사인 에쓰오일을 통해 울산에서 진행 중인 ‘샤힌 프로젝트’도 이런 전략의 연장선 위에 있다.

샤힌 프로젝트는 원유에서 바로 화학 제품을 뽑아내는 신기술로 원가를 대폭 낮춘 첨단 생산 시설이다. 연산 180만t 규모 샤힌 프로젝트에도 AI가 도입돼 비용 절감과 한발 앞선 기술 경쟁력을 구현하게 된다. 생산·설비·정비·검사·안전 시스템을 통합한 AI 플랫폼, 작업 세부 단계별 위험 요소를 관리하는 AI 기반의 작업 위험성 평가 모듈 등이 탑재된다.

알 가자위 부사장은 “최근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통합·재편 상황을 잘 알고 있다”며 “샤힌 프로젝트는 아람코의 핵심 AI 기술과 지식재산권이 담긴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이자 한국 석유화학 산업 전체에도 의미 있는 시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