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국내 산업계는 업종별로 희비가 엇갈렸다. 자동차와 석유화학 등은 미국의 고율관세 부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조선과 방위산업 등의 업종은 글로벌 수요가 증가하며 호황을 맞았다. 2026년 글로벌 경제를 움직일 주요 이슈에 대해 짚어보고 이에 따른 업종별 영향을 전망해 본다. [편집자주]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HD현대중공업 제공

울산 미포만과 전하만 일대의 HD현대중공업 조선소 독(dock·선박 건조 시설)은 연말에도 빈자리가 없었다. 지난달 25일 기준 대형 상선을 건조 중인 독 10곳이 선박으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진수 후 마무리 공정이 이뤄지는 안벽 역시 출항을 기다리는 선박으로 가득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전체 독 14곳을 기준으로 보면 30여척의 선박이 건조 중으로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며 “안벽에도 선박 약 40척이 정박해 의장 작업과 시운전을 하고 있는데, 공간이 부족해 선박 두 대를 나란히 붙여놓는 이중 접안을 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6년 한국 조선업계는 이미 확보한 3.5년 치의 넉넉한 일감을 바탕으로 ‘제값 받는’ 선별 수주 전략을 이어갈 전망이다. 업계에 따르면 2028년까지 인도 물량은 이미 꽉 찬 상태이고, 2029년 인도 슬롯(건조 공간)을 두고 선주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선가도 점차 오르는 추세다.

수익성 개선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선가가 본격적으로 상승 궤도에 오른 2023년 이후 수주 물량이 2026년 실적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때문이다. 한승한 SK증권 연구원은 “주요 원자재인 후판 가격이 하향 안정화 국면에 접어들어 비용 부담도 줄어들고 있다”며 “생산성 향상과 고가 수주 물량 인도가 맞물리며 견고한 이익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수출액 숨 고르기에도 물량 8% 증가… “알짜 상선이 효자”

3일 산업연구원(KIET)이 최근 발표한 ‘2026년 경제·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26년 국내 조선업계의 수출 물량은 1046만CGT(표준선환산톤수)로 2025년 대비 7.9%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조선업계의 주력인 상선 인도가 늘어나면서 견조한 업황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다만 수출액은 303억2600만달러(약 43조9000억원)로 전년 대비 4.0%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선박 가격 하락이 아닌 선종(船種) 변화 영향이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2025년에 고가의 해양플랜트 수출이 몰려 금액이 컸던 기저효과로 2026년 수출액 수치는 줄어들지만, 실제로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주력 상선의 인도가 본격화하면서 해외로 나가는 선박의 물량 자체는 늘어나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손민균

수주 포트폴리오의 무게추도 고부가·특수선으로 이동한다.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에 따르면 2026년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삼성중공업·HD현대삼호 등 국내 주요 조선사의 선종별 신규 수주 비중은 LNG선이 33%로 가장 크다. 해양플랜트(21%), 특수선(18%)이 뒤를 이을 전망이다. 중국이 약 72%를 장악한 범용 컨테이너선 시장(한국 점유율 약 22%)을 피하고, 한국이 압도적 우위(약 66%)를 점한 LNG선 등 고부가가치 시장에 집중한 결과다.

◇ “고부가 LNG선, 2026년에 다시 뛴다”… 발주 붐에 선가 상승 기대

특히 한국 조선업계가 강점을 보이는 LNG선 시장 기대감이 크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025년은 당초 예상보다 LNG선 수주가 부진했으나 4분기부터 수주가 활발해지고 있으며 슬롯 확보를 위한 발주 의향서(LOI)도 잇따라 접수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LNG운반선./삼성중공업 제공

NH투자증권은 2026년 국내 조선사들의 합산 신규 수주가 약 388억달러(약 56조원)를 기록해 전년 대비 10%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 연구원은 “2026년 국내 조선사의 핵심 수주는 LNG선과 유조선”이라며 “유조선은 높은 운임을 바탕으로 선가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LNG선 역시 발주 확대로 가격 협상력이 높아지고 있어 신조선가도 상승 전환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증권가에서는 앞으로 6~12개월 내 LNG선 신조선가가 지난해 말보다 약 5% 상승한 2억6000만달러(약 3700억원)를 상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 연구원은 “2026년 글로벌 LNG선 예상 발주량 77척 중 국내 조선사가 72척을 수주할 것으로 예측된다”며 “한국 조선사들의 2029년 인도 가능 물량인 70척 중 20척은 이미 소진된 상태라 잔여 슬롯에 대한 선주들의 경쟁으로 선가가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美 방산 진출 ‘청신호’… “2026년은 협력 기반 닦는 해”

2026년은 한국 조선업계가 미국 방산 시장 진출을 위한 초석을 다지는 해가 될 것이란 의견도 많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미 해군 차기 호위함 건조 주 사업자로 헌팅턴 잉걸스(HII)를 선정한 데 이어, 사상 최대 규모의 수상 전투함(BBG)을 향후 20~25척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한국 조선업계의 낙수 효과가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승한 연구원은 “미 HII 조선소가 신형 호위함 건조까지 진행하려면 생산 병목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결국 HII 조선소가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외부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초도함 이후 물량에 대해서는 HII와 함정 건조 파트너십을 맺은 HD현대중공업이나 미 해군과 함정정비협약(MSRA)을 체결하고 현지 야드를 확보한 한화오션 등 한국 조선소와의 협업 가능성이 거론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한화 필리조선소 전경./한화 제공

다만 미국과의 방산 협력이 가시적 성과를 내기까지는 수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정 연구원은 “한국 조선소와의 직접적인 협력이 진행되려면 미국 법안 개정이 필수적인 데다 조선소 상황에 따라 군함 건조를 위한 설비투자가 필요할 수 있다”며 “2026년은 국내 조선사들이 미 함정 건조를 시작하기에 앞서 장기적으로 한국 조선소와의 협력 가능성을 높여가는 해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창 연구위원 역시 “2026년은 한미 조선 협력의 기반을 다지는 기간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한화오션의 필리조선소 등 국내 조선사가 미국에서 생산량을 늘리려면 현지 인력을 양성해야 하는데 채용부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수주를 받고 설계를 하고 인력을 양성하는 과정에서 내년은 시행착오를 겪는 ‘좌충우돌’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조선사들은 해외 거점을 확대하고 생산 능력을 키워 구조적 호황에 대응한다는 청사진을 세웠다. 산업연구원은 2026년 한국 조선업계의 해외 생산이 베트남(최대 20% 증가)과 미국(20% 이상 증가)을 중심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 조선사의 미국 투자와 진출로 MRO를 비롯한 선박 관련 수출이 기대된다”며 “내년 국내 조선사들은 1100만CGT 정도를 건조하고 생산 능력에 맞춰 1100만~1200만CGT 수준을 수주하며 3.5년치 일감을 유지하는 모습을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