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후 1시 3분, 관세청이 실시간으로 집계하는 한국 수출액이 사상 최초로 연간 7000억달러를 돌파했다. 연초 ‘트럼프발 관세 충격’ 등 각종 악재가 컸지만, 인공지능(AI)이 촉발한 반도체 수퍼사이클 효과가 본격화하면서 반등에 성공했다. 하지만 ‘반도체 수출 착시’란 말이 나올 정도로 반도체 의존도가 높아져, 다른 주력 산업의 체질 개선과 수출 지역 다변화 등이 올해 과제로 꼽힌다.
1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연간 수출액은 7079억달러(1024조3000억원)로 최종 집계됐다. 12월의 경우 수출이 전년 대비 13.4% 증가한 695억7000만달러로, 역대 12월 중 최대치를 기록했다. 반도체 수출이 207억7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43.2% 늘어난 결과다. 반도체 월 수출액이 200억달러를 넘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12월 대(對)미국 수출이 5개월 만에 플러스(3.9%·123억달러)로 전환한 것도 반도체 효과였다.
반도체는 작년 수출액과 비중에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우며 전체 수출을 이끌었다. 연간 수출액이 1733억9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22.2% 늘었고,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4.4%로 커졌다. 산업부 관계자는 “AI 서버 인프라 수요에 서버 교체 수요까지 겹치면서, 지난달 D램 등 주요 메모리 제품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세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도체가 홀로 이끈 수출 7000억달러 금자탑 뒤에는 다른 전통 수출 산업의 부진이 있다. 반도체의 상승세와는 달리, 우리 주요 15대 수출 품목 중 9개 품목은 전년 대비 수출액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역성장했다. 석유화학(-11.4%)·이차전지(-11.9%)가 두자릿수로 떨어졌고, 석유제품(-9.6%)·디스플레이(-9.4%)·철강(-9.0%)·가전(-8.8%)·일반기계(-8.3%)가 10% 가까이 감소하는 등 낙폭도 컸다.
또 올해 양대 수출 시장인 중국(-1.7%)과 미국(-3.8%) 모두에서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한 것도 고민거리다. 미국은 대미 관세가 새로 도입된 여파이지만, 중국은 3년 연속 무역 수지 적자를 기록하는 등 구조적 적자가 나타나고 있다. 중간재를 중국에 수출해 중국 경제 성장의 수혜를 입던 한국 산업계가 이제는 중국과 기술·생산 단가·규모 모든 분야에서 뒤처지기 시작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각국의 수출 장벽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것도 우려스럽다. EU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해 탄소 배출량에 비례하는 사실상의 관세를 추가 부과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수출 국가 및 품목 다변화, 철강·석화 등 전통 산업의 고부가가치화가 앞으로 남은 과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