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국내 산업계는 업종별로 희비가 엇갈렸다. 자동차와 석유화학 등은 미국의 고율관세 부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조선과 방위산업 등의 업종은 글로벌 수요가 증가하며 호황을 맞았다. 2026년 글로벌 경제를 움직일 주요 이슈에 대해 짚어보고 이에 따른 업종별 영향을 전망해 본다. [편집자주]
지난달 4일(현지 시각)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 허드슨야드 쇼핑몰에 위치한 제네시스 전시장. 대여섯 명이 입장객이 중형 세단 G70 등 여러 대의 제네시스 모델을 살펴보고 있었고, 영업 직원들은 이들을 응대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직원들은 가격이 인상될 것으로 예상하는 고객들의 구매 문의가 최근 많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전시장에서 만난 한 직원은 “대부분의 2026년식 모델은 최근 2000달러(약 300만원) 정도 가격이 오른 상황”이라며 “관세를 반영해 내년(2026년)에 재차 가격이 오를 예정이라 지금 구매할 것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제네시스를 포함한 현대차와 기아 브랜드뿐 아니라 일본과 독일 업체들도 올해 관세로 부진했던 실적을 만회하기 위해 점진적인 가격 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고율관세 부과 등으로 힘든 한 해를 보냈던 국내 완성차 제조사들이 2026년에 반등을 노린다. 특히 현대차·기아는 2025년 10월 한국과 미국의 무역협정 타결로 관세 관련 불확실성이 사라진 데다, 최근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판매량이 빠르게 늘고 있어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유럽과 중남미, 동남아시아 등에서는 중국 자동차 업체들과의 힘겨운 경쟁이 예상된다. 특히 유럽 시장의 경우 2026년부터 중국 전기차 제조사들이 현지 공장을 가동하면서 공급량이 크게 늘어나 국내 기업들이 고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연구개발(R&D) 분야에서도 변화가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자율주행 기술 경쟁에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지만, 엔비디아와의 협업에 힘입어 2026년에는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는 상황이다.
◇ 美 관세 부담 완화·하이브리드차 판매 호조로 실적 반등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는 지난달 8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2026년 국내 완성차 산업은 내수 판매와 수출 모두 전년 대비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5년의 경우 내수는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전기차 판매 회복 등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2.5% 증가한 167만7000대를 기록하지만, 수출은 미국의 고율관세 부과 등으로 2.3% 감소한 272만대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2026년 내수 판매는 전기차를 포함한 친환경차의 수요 확대, 신차 출시 등에 따라 전년보다 0.8% 늘어난 169만대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제네시스는 올해 대형 플래그십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GV90을 선보인다. 현대차는 신형 아반떼와 투싼 등을 선보이며, 기아는 최근 출시한 신형 셀토스 등의 신차를 앞세워 국내 소비자를 공략할 계획이다.
수출은 더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KAMA는 미국 관세와 관련된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친환경차를 중심으로 해외 시장에서 수요가 늘어 2026년 수출이 전년 대비 1.1% 증가한 275만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지난해 4월부터 수입차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한국은 10월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 미국과 무역협상을 타결해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에 완성차 시장 전문가들은 현대차·기아가 조정된 관세를 점진적으로 미국 판매 가격에 반영하면서 2026년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이브리드차의 수요도 계속 늘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기아의 경우 2025년 11월까지 미국 내 하이브리드차 합산 판매량이 3만6172대로 전년 동기 대비 49% 급증했다. 미국에서 지난해 9월 전기차에 대한 세액공제를 끝내면서 전기차 시장은 2026년에도 위축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현대차·기아와 일본 완성차 업체들은 하이브리드차 판매 확대로 실적을 방어할 것으로 보인다.
유민기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기아의 경우 미국 전체 판매량에서 하이브리드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15% 미만으로 도요타(44%), 혼다(26%)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며 “제품 라인업에서 하이브리드차의 비중을 확대하는 데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 판매 차량 10만대가 하이브리드차로 대체될 경우 연간 4000억원의 추가 이익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유지웅 다올투자증권 연구원도 “현대차그룹의 현 상황은 2000년대 초 도요타가 친환경차인 프리우스를 앞세워 미국에서 경쟁 우위에 섰던 것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차와 기아는 대형 SUV인 팰리세이드, 텔루라이드에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해 신차로 출시했다”며 “두 모델의 미국 내 연간 판매량은 각각 20만대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 유럽·동남아선 中과 힘겨운 경쟁… 인도 공략 집중할 듯
다만 미국의 신차 수요는 저조한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현대차증권은 2026년 미국의 신차 수요는 1584만대로 전년 대비 0.1% 증가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때문에 현대차·기아를 포함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미국보다 신차 수요가 더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을 공략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동남아는 최근 수년간 높은 성장세를 보인 신흥 시장이다. 현대차증권은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필리핀·베트남·싱가포르 등 아세안(ASEAN) 6개국의 2026년 신차 수요가 312만대로 전년 대비 3% 늘 것이라고 예상했다.
동남아 시장에서는 오랜 기간 일본 자동차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했지만, 최근 중국 업체가 약진하고 있다. 동남아에서 전기차의 비중이 확대되면서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차 중심의 일본차는 점차 수요가 줄고 있는 반면, 중국 전기차 판매량은 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사 PwC에 따르면 아세안 6개국 완성차 시장에서 일본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은 2010년대 평균 77%에서 2025년 상반기 62%로 하락했다. 반면 중국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를 앞세워 점유율을 5%까지 늘렸다.
국내 업체들은 아직 동남아에서 점유율이 미미한 편이다.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현대차의 점유율은 3.6%에 불과했고, 태국과 말레이시아는 진출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대차·기아는 내연기관차 시장에서는 오래 전부터 시장을 선점해 온 일본차와, 전기차 시장에서는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차 업체들과 계속 힘든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도 중국 업체들의 공세가 거세질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차증권은 서유럽의 2026년 신차 수요가 전년 대비 1.5% 증가한 1513만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미국의 내년 수요 예측치와 비슷한 규모다.
유럽연합(EU)은 지난 2023년 10월부터 중국산(産) 전기차에 추가 상계관세를 부과하고 있지만, 중국 업체들은 관세 대상에서 제외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게다가 2026년에는 중국 전기차 제조사인 BYD의 튀르키예 공장이 가동을 시작해 공급량이 늘어날 예정이다.
다만 최근 미국에 이어 유럽도 친환경차 지원 정책이 후퇴하고 있는 점은 변수가 될 수 있다. EU는 오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전면 중단하겠다는 기존 정책을 최근 철회했다. 이 조치는 대부분의 생산 차종이 전기차에 쏠려 있는 중국 업체보다 전기차 외에 내연기관차, 하이브리드차 등 다양한 차종을 생산하는 현대차·기아에 유리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현대차·기아 등 국내 업체들이 2026년에 가장 주목하고 있는 시장은 인도다. 현대차증권의 2026년 인도 신차 수요를 전년 대비 5% 늘어난 531만대로 예상했다.
인도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곳은 일본 업체인 스즈키의 현지 자회사 마루티 스즈키로 약 40%의 점유율을 차지한다. 현대차·기아는 합산 점유율이 약 20%로 2위를 기록 중이다. 현대차는 인도 시장 공략 속도를 높이기 위해 최근 인도 법인 최고경영자(CEO)로 인도인인 타룬 가르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선임하기도 했다.
장문수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인도 시장은 기준금리와 세율 인하로 최근 소비 심리가 개선돼 2026년에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이라며 “현대차는 기존 첸나이 공장에 이어 푸네 공장까지 가동을 시작해 생산량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