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이 올해 11년 만의 최대 실적을 달성한 가운데, 연말 성과급 지급 규모와 산정 기준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생산 차질 우려로까지 번지고 있다. 지난 24일 지급된 하반기 목표달성장려급(TAI)이 상반기 및 지난해와 동일한 수준인 월 기본급의 50%로 책정되면서 직원들의 반발이 빗발치고 있어서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는 삼성그룹 서초사옥 상경 시위에 이어 선박 인도 거부 등 물리적인 실력 행사까지 예고하고 나섰다.
3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 노협은 지난 29일부터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성과급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노협은 사측의 전향적인 안이 나오지 않을 경우 단순 피켓 시위를 넘어 실질적인 생산 타격을 주는 방식으로 투쟁 수위를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최원영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위원장은 조선비즈에 “긴 적자의 터널을 지나 십수년 만에 최대 실적을 달성했는데도, 회사는 여전히 불투명한 기준을 앞세워 직원들의 정당한 보상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회사의 미래 역점 사업인 마스가(MASGA) 등이 성공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도 현장의 협력은 필수적”이라며 “경영진이 성과를 독식하는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직원들이 사명감을 갖고 일할 명분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협은 전날 최성안 삼성중공업 부회장(대표이사)에게 노사 성과급 제도 협의 테이블 마련과 개선안 제시를 요구하는 공식 서한을 전달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노협은 최 대표가 오는 1월 9일까지 납득할 만한 답변을 내놓지 않을 경우, 공정 중단과 선박 인도 지연 등 투쟁 강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 영업익 70% 늘었지만 제자리 보상에 직원들 불만 고조
증권가에서는 삼성중공업의 올해 영업이익이 지난해 대비 7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29일 기준 삼성중공업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8713억원, 당기순이익은 6579억원으로 추산된다. 지난해(영업이익 5030억원·순이익 640억원)와 비교하면 실적이 대폭 개선됐다. 특히 하반기 수익성 개선세가 뚜렷하다. 증권가 추정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의 하반기 영업이익은 상반기 대비 60% 증가한 것으로 예측됐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24일 직원들에게 하반기 목표달성장려급(TAI·Target Achievement Incentive)으로 지난해 및 올 상반기와 동일한 월 기본급의 50% 지급했다. 삼성그룹의 정기 성과급 제도 중 하나인 TAI는 매년 상하반기에 한 차례씩 평가 기준에 따라 월 기본급의 최대 100%를 차등 지급하는 방식이다.
삼성중공업은 TAI 평가 시 동종사 대비 영업이익률, 주당이익률, 투하자본이익률(ROIC) 등을 비교 지표로 삼고, 여기에 안전 지표와 경영목표 달성 여부 등을 종합해 지급률을 산정한다. 삼성중공업 직원들 사이에서는 “작년이나 올해 초와 비교해 훨씬 나은 성적을 냈는데도 올해 말에도 경쟁사와의 비교를 앞세워 동일하게 50%를 지급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내부 불만이 고조되자 사측은 지난 29일 김경희 최고재무책임자(CFO·부사장) 주재로 사내 설명회를 열고 경영 현황을 공유했다. 김 부사장은 이 자리에서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등 경쟁사 대비 이익률이 50~77% 수준에 그치고, 100% 환헤지(환율 위험 분산) 정책으로 경쟁사와 달리 고환율에 따른 환차익을 보지 못했다”는 취지로 성과급 책정 배경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직원들은 “경영진이 보수적인 환헤지 전략을 택해놓고, 환차익을 거둔 경쟁사와 비교하며 10년 만의 최대 실적에도 성과급을 작년 수준으로 묶어두는 건 명백한 책임 전가”라고 비판했다.
◇ “우리도 HD현대重처럼 영업익으로… 개선 안 되면 선박 인도 지연 나설 것”
성과급 논란은 내년 초 지급 예정인 ‘초과이익성과급(OPI·Overall Performance Incentive·옛 PS)’으로 옮겨붙는 모양새다. OPI는 소속 사업부의 연초 목표 대비 초과 이익의 20% 한도 내에서 연봉의 최대 50%를 지급하는 제도로, 삼성 성과급의 핵심으로 꼽힌다.
삼성중공업은 조선업 불황이 시작된 2014년 이후 OPI를 지급하지 않아 왔다. 2023년에는 8년 만에 영업이익 흑자를 냈으나 148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해 OPI가 지급되지 않았고, 순이익 흑자 전환에 성공한 작년에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에 따른 건조 계약 해지 비용 등이 반영돼 OPI 지급이 무산됐다. 회사는 대신 별도의 격려금 명목으로 올해 초 일시금을 지급했다.
이를 두고 삼성중공업 일부 직원들은 성과급 지급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삼성은 경제적 부가가치(EVA)를 기준으로 OPI를 산출하는데, 세후영업이익에서 법인세, 투자금과 같은 자본비용을 차감한다. 영업이익 절대 값이 크더라도 비용을 많이 썼다면 EVA는 낮을 수 있다. EVA 계산식은 경영 기밀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 성과급 제도에 대한 불만은 삼성 계열사 전반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조(전삼노)도 지난해 7일 창사 이래 첫 파업에 나서면서 EVA 기반의 OPI 개선을 요구했다.
노협 측은 “HD현대중공업 등 경쟁사처럼 영업이익에 기반한 성과급 제도가 도입될 때까지 투쟁 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했다. 노협은 앞서 통보한 최후통첩 시한까지 사측이 대안을 내놓지 않으면 당장 내달부터 선박 인도 지연 등 고강도 투쟁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