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온 2050년 에너지 믹스 시나리오에는 전기요금 부담이 얼마나 늘어날지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지 않다. 전기요금 부담이 얼마나 늘어날지, 틀려도 좋으니 시나리오가 나와야 한다. 여기다 지금 논의되는 내용은 사실상 탈원전 시나리오다. 세계 경제를 이끄는 미국과 중국이 원전을 되살리며 산업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반대로 가고 있다. 한국만 탄소중립을 하다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방향이 맞지 않으면 궤도를 바꿔야 한다.”(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

“원전은 규모가 크고, 실시간 출력 조절이 안 된다는 단점이 있다. 원전이 일시 정지하면서 생기는 전력 공백을 연료비가 비싼 가스 발전이 계속 메우고 있다. 사실상 연료비가 없는 태양광이 가스 발전을 대체하고 있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경제성, 안전성에 대한 논의부터 해야 한다. 신규 대형 원전을 더 짓는 건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다.”(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

30일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탄소중립과 바람직한 에너지 믹스’를 주제로 연 1차 정책 토론회에서는 원전 신규 설치 여부, 석탄 발전소 폐지와 관련한 설전이 오갔다. 이번 토론회는 탄소중립 달성을 전제로 한 중장기 에너지믹스 방향과 전력 수급 안정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렸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탄소중립과 바람직한 에너지 믹스’를 주제로 1차 정책 토론회를 열었다. / 뉴스1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토론회 시작에 앞서 가진 기조연설에서 원전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김 장관은 “원전은 중요한 기저 전원이었지만, 전 세계 단위 면적당 원전이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라며 “원전은 사고가 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에너지원인 것은 틀림없고, 유연하게 운전하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김 장관은 “인류사에 가장 절박한 문제가 기후 위기 대응이라면 석탄발전소와 가스발전소도 에너지원에서 퇴출하고 궁극적으로 탄소가 배출되지 않는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잘 결합한 에너지 대전환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실제로 어떻게 실행할지가 한국의 숙제”라고 말했다.

김 장관의 해당 발언은 토론회 내내 도마 위에 올랐다. 일부 패널과 참석자들은 김 장관이 탈원전 토론회를 연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정 교수는 토론 중 “우리나라는 단위 면적당 원전만 제일 많은 게 아니라 태양광 패널도 가장 많이 깔린 나라”라고 비판했다.

◇ “재생에너지로 산업 지키기 어렵다” vs “원전, 출력 감발로 전력 낭비”

정책토론회는 세 명의 발제자가 발표를 진행한 후 패널 토론이 이뤄졌다. 첫 발표는 신힘철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이 ’50년 에너지 수요 전망’을 주제로 진행했다. 이어 이지웅 부경대학교 교수가 ‘탄소 중립과 석탄발전 전환 방향’, 옥기열 한국전력거래소 에너지시스템혁신본부장이 ‘해외 주요국 에너지믹스 계획 및 우리나라 정책 방향’을 주제로 발표했다. 모두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충 기조에 기반한 분석이었다.

토론회 좌장은 장길수 고려대학교 교수가 맡았다. 패널로는 정 교수, 오형나 경희대학교 교수, 송용현 사단법인 넥스트 부대표, 석 전문위원, 남태섭 한국노총전국전력산업노동조합연맹 사무처장, 최혁준 한국서부발전 공주건설본부장이 참석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탄소중립과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1차 정책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 교수는 “이번 발제 중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를 늘렸을 때 향후 전기 가격이 얼마인지, 새로 원전을 지었을 때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에 대한 내용은 전부 빠졌다”며 “재생에너지를 정부안대로 늘릴 경우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하려면 200기가와트(GW) 정도의 배터리가 필요한데, 지금 단가로 100조원이 필요하고 비가 와서 태양광 발전을 하지 못하면 300조원의 ESS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재생에너지로는 우리나라 산업을 지킬 수 없다”며 ”한국 기업들이 안정적인 전기를 찾아 미국에 가겠다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 결국 산업이 사라져 자녀들이 일할 곳이 없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탈원전 활동가로 활동한 석 위원은 국내 원전에서 연평균 5회 정도 ‘출력 감발’(출력을 강제로 낮춰 발전량을 줄이는 조치)이 발생하면서 안전성,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태양광 발전 비율이 늘어날수록 전력 당국은 전력망 과부하를 막기 위해 기저 전원인 원전 출력을 줄이는 감발을 한다.

석 위원은 “우리나라보다 원전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프랑스도 365일 원전 출력을 감발하면서 결국 전기를 낭비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고립 계통(외부 전력망과 연결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전력 시스템)이어서 재생에너지 확대로 전력 계통이 감당할 충격이 다른 나라보다 커 신규 원전 건설을 얘기하는 건 상황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석탄 화력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송 부대표는 “탈석탄만으로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크게 줄일 수 있는데, 우리 사회가 확실하게 탈석탄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일정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 사무처장은 “석탄 발전소가 사라지는 건 결국 일자리, 지역 경제와 연결되기에 어떻게 보상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참석자들의 질의가 쏟아지면서 예정 시간을 30분가량 넘긴 후에 끝났다. 참석자들은 2차 토론회에서는 질문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넉넉히 배분해달라고 건의했다. 2차 토론회는 다음 달 첫째 주에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