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위해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체결한 경영협력계약서를 공개하라고 명령했다.

30일 고려아연 계열사인 KZ정밀(구 영풍정밀)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0부는 KZ정밀이 영풍 및 장형진 영풍 고문 등을 상대로 제기한 문서제출명령 신청을 인용했다.

그래픽=손민균

KZ정밀은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맺은 콜옵션 계약 등이 담긴 계약서를 공개하라며 지난 22일 법원에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했다.

또 KZ정밀은 영풍 주주로서 장형진 고문 및 영풍 이사가 영풍에 손해를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며 9300억원대 주주대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9월 영풍, 장형진 영풍 고문 일가 등과 주주 간 계약을 체결해 의결권을 공동 행사하기로 하고, 영풍 및 특수관계인 소유 지분 일부에 대해서는 콜옵션을 부여받기로 했다.

KZ정밀은 양측의 경영권 분쟁이 불거진 이후 사명을 영풍정밀에서 고려아연(KoreaZinc)의 앞 글자를 딴 KZ정밀로 바꿨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작은 아버지 최창규 회장이 KZ정밀을 운영하고 있다.

재판부는 결정문을 통해 “(KZ정밀의 신청이) 문서로 인해 행사될 가능성이 있는 콜옵션 등으로 발생할 영풍의 손해를 청구 원인으로 하고 있다”면서 “그에 따라 사실 여부, 손해액수 등 인용 범위가 달라질 수 있는 만큼 해당 내용을 파악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이어 “다른 세력에 대응해 (고려아연에 대한) 경영 지배권을 확보 내지 유지하기 위한 전략에 관한 내용이라면 이를 영업 비밀 사항으로 제출 의무가 없는 경우에 속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적시했다.

경영 협력 계약이 영업 비밀이라는 영풍·MBK의 주장을 배척한 것이다. 재판부는 “만일 경영 지배권 확보·유지 전략이 특정 경영진에게는 이익이 되는 반면 전반적인 회사의 이익에는 부합하지 않는 내용으로 돼 있다면 이를 지적하며 경영진의 책임을 추궁하는 소를 제기한 주주의 감시 활동 대상으로 삼도록 함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법원이 세부 내용을 제출하도록 명령한 문서는 영풍과 MBK파트너스 측이 지난해 9월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작성한 경영 협력 계약서다. 양측이 경영권 인수를 시도한 지난해 하반기 이후 해당 계약을 둘러싸고 다양한 추측이 오갔지만 계약 내용이 공개된 적은 없다.

해당 계약은 영풍보다 MBK파트너스에 유리한 구조로 설계됐다는 추측이 많았다. MBK파트너스가 영풍이 소유한 고려아연 주식을 저렴한 가격에 인수할 수 있는 콜옵션 권리가 포함됐을 것이란 관측이 대표적이다.

법원 결정에 따라 장형진 고문은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체결한 경영 협력 계약서와 그 후속 계약서를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결정문을 송달받은 날로부터 9일 이내에 제출해야 해 1월 초에는 계약서가 공개될 전망이다.

KZ정밀 관계자는 “영풍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고려아연 주식을 MBK파트너스에 얼마에, 어떤 방식으로 넘기는지 시장과 주주의 의혹이 명백히 규명돼야 한다”면서 “언론에서 제기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장형진 고문을 비롯한 경영진은 주주 대표 소송과 손해배상 등에서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