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사업의 첫 단추 격인 2조8000억원 규모 유상증자가 때아닌 환율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려아연이 미국 전쟁부(옛 국방부) 등 미국 측 파트너에게 지분 약 10%를 새로 부여하는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신규 발행하는 주식의 가격을 정하는 원·달러 환율 기준에 대해 경영권 분쟁 중인 MBK 측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은 지난 15일 이사회 결의를 통해 미국 정부가 참여하는 미국 합작법인(크루서블 JV)을 대상으로 2조8508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진행했다. 지난 26일 대금이 납입됐다고 공시했다.
15일 이사회 결의 때 환율을 기준으로 한 금액이다. 당시 고려아연은 주당 발행가액을 877.94달러로 정하고, 직전 영업일인 12일자 하나은행 최초 고시 매매 기준율 1469.50원을 적용해 원화 발행가액을 129만133원으로 계산했다. 고려아연 주식 시가를 감안한 기준 주가 대비 9.77% 할인한 수준이었다.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제5-18조는 상장사가 제3자 배정 증자에 적용할 수 있는 할인율을 10%로 제한한다. 지나친 헐값 발행으로부터 기존 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런데 환율이 지난 24일 외환 당국의 시장 개입으로 급락하면서 변수가 생겼다. 24일, 25일 연이어 하락하면서 26일 기준 환율 1460.60원을 적용하면 2조 8336억원이 된다. 26일 매매 기준 환율 기준 주당 발행 가액은 128만 2320원이다. 기준 주가(142만 9787원) 대비 10.31% 할인가여서 10% 한도를 넘게 된다.
이에 대해 영풍·MBK 측은 29일 보도자료를 통해 “자본시장법이 정한 발행 가액 제한 규정을 위반할 리스크가 있어 이 문제를 시급히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며 “이사회 결의 내용과 다른 유상증자이므로 위법한 유상증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본시장법의 발행가액 규제를 위반한 이번 신주 발행은 원천 무효 사유에 해당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라며 “고려아연 측에서 이사회 결의, 정정 공시 등 가능한 방법을 통해 빨리 이 문제를 적법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MBK 측 주장대로 금융 당국의 ‘정정 공시 요구’가 이어지면 유상증자 절차는 다시 이뤄져야 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내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있는 지분’의 기준을 정하는 올해 주주명부 폐쇄일(오는 12월 31일)을 넘기게 된다. 미국 합작 법인에 우호 지분 10%를 부여해 ‘백기사’ 역할을 기대한 고려아연 측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 측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자사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의 할인율이 법정 한도인 10%를 초과했다는 주장에 대해 “악의적인 사실 왜곡”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고려아연은 이날 입장문에서 “이사회가 신주 발행 가액을 미국 달러로 확정해 신주 수량을 확정했고, 발행 총액도 이사회 결의 시점에 미국 달러로 확정됐다”며 “할인율은 이사회 결의 이후의 환율 변동에 따라 사후에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법원이 적법한 발행으로 승인한 신주 발행을 사후적으로 마치 논란이 있는 것처럼 시장에 혼란을 초래하는 것은 매우 악의적인 시장 교란 행위인 만큼 엄중한 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며 “미국과 협력을 무산시키려는 특정 세력과 배후의 사실 왜곡·여론 호도에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