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액화천연가스(LNG) 화물창(KC-2) 기술 국산화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조선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LNG를 운반하기 위해선 섭씨 영하 163도로 냉각해야 하는데, 화물창은 이를 보관하는 저장고를 뜻한다. 화물창은 LNG 운반선 사업의 핵심 요소로 꼽히지만, 그동안 국산화를 이루지 못해 국내 조선사들은 해외 업체에 거액의 기술 사용료를 지급해 왔다.

프랑스 업체 GTT의 원천 기술을 적용해 만든 LNG운반선의 멤브레인형 화물 탱크 내부 모습. /현대중공업 제공

29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지난 22일 민관 합동 워킹그룹을 가동해 신규 국적선 발주 등을 포함한 LNG 화물창 국산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조선 3사는 각자 화물창 기술을 개발해 왔지만, 이를 제대로 상용화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에 정부가 조선사들이 개발한 기술의 검증과 비용, 위험 등에 대한 지원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삼성중공업은 화물창 기술을 독자 개발해 지난 10월 7500㎥급 LNG 운반선에 최초로 탑재하고 경남 통영에서 제주까지 운항하는데 성공했다. HD현대중공업도 자체 화물창 기술인 KC-2B를 중형급 선박인 LNG 벙커링선에 적용해 실증을 마쳤다.

문제는 이 기술을 대형 선박에 적용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국내 조선사들의 화물창 기술이 탑재된 대형 LNG 운반선은 트랙 레코드(수주 실적)가 없었던 탓에 선주사들이 발주를 꺼렸기 때문이다.

과거 국내에서는 화물창 기술 국산화를 위해 한국가스공사가 발주사, SK해운이 사업자로 참여하고 삼성중공업이 건조를 맡는 대형 LNG 운반선 공동 개발에 나섰다. 국산 화물창 기술이 적용된 이 선박은 지난 2015년 개발이 완료됐지만, 출항 직후 ‘콜드 스폿(cold spot·LNG 운반선 결함으로 인한 결빙 현상)‘이 발생했다. 1000억원을 투입해 수 차례의 수리를 거치고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결국 3사는 2019년부터 지금껏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형 화물창 기술(KC-2B)을 적용한 액화천연가스(LNG) 벙커링선 '블루 웨일호' 모습. /산업통상부 제공

전세계 LNG 운반선 시장의 화물창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프랑스 GTT사와의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는 점도 국산화를 제대로 추진하기 어려웠던 이유로 꼽힌다. 화물창 국산화 과정에서 분쟁이 생기면 GTT로부터 화물창 기술을 제공 받기 어려워지고, 이 경우 LNG 운반선 수주도 막힐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국내 조선 3사 역시 모두 GTT의 화물창 기술을 쓰고 있다. 지난해 조선 3사가 LNG 운반선 52척의 화물창 로열티로 GTT에 지불한 금액은 9954억원에 달한다. 대당 191억원 수준이다.

GTT는 국내 조선사에 화물창 기술을 제공하는 대가로 운영 과정에서의 모든 시행착오와 기술적 요소를 보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 국산 화물창 기술이 적용된 LNG 운반선의 국제 해역 운항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신형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KC-2 기술을 기반으로 정부가 국산화를 추진했다가 잘 진척되지 않았던 적이 한 차례 있었다”면서 “기술을 적용할 대형 국적선 발주부터 국산화 이후 GTT와의 분쟁 가능성에 대한 준비까지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