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전기 요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전을 거치지 않고 발전사에서 전기를 직접 사 쓰는 ‘전력 직구’로 돌아서는 기업이 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전력 당국은 기업들의 전력 직구를 장려하기보다는 ‘한전 탈출’을 어렵게 만들었다. 전력 직구 기업에 ‘계약 의무 기간 3년’이라는 족쇄를 채우며 제도의 문턱을 높인 것이다. 정부가 앞장서 기업들의 전력 직거래를 장려하며 전기료 부담을 어떻게든 낮춰주려는 중국과는 상반되는 정책을 택한 것이다.
26일 전력거래소 등에 따르면, 올 하반기에만 20곳의 사업장이 전력 직구 거래 등록을 신청했다. 상반기까지 3곳에서 급증한 것이다. 전력 직구 1호인 SK어드밴스드를 시작으로 LG화학, 삼성전기 등 주요 대기업에 이어, 공기업 중 전기료 부담이 가장 큰 코레일(한국철도공사)도 지난 6월 직구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해 국내 전력 소비 2위였던 현대제철도 전기로(爐)가 있어 전기 사용량이 많은 인천 공장을 중심으로 전력 직구를 검토 중이다.
기업들이 직구로 돌아서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전의 산업용 전기 요금이 너무 비싸졌기 때문이다. 지난달 기준 전력 도매 가격(한전이 발전사에서 사들이는 가격)은 kWh당 94.81원으로 떨어진 반면, 한전의 산업용 판매 단가는 179.23원까지 치솟았다. 업계 관계자는 “직구에 따른 이런저런 부대 비용을 다 합쳐도 직구를 하면 한전 요금보다 kWh당 20~30원은 싸다”며 “전기료가 원가의 핵심인 석유화학·철강 업계로서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지난해 2021년 대비 57% 급증한 5796억원을 전기료로 납부한 코레일은 전력 직구로 전환할 경우 약 6.9%의 비용 절감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전력 당국은 직구 제도의 문턱을 높였다. 전기위원회는 올해 이 제도를 본격화하면서 당초 1년이었던 ‘최소 계약 유지 기간’을 3년으로 대폭 늘렸다. ‘타당한 사유가 있으면 전력 직구를 조기 종료할 수 있다’는 조항도 삭제했다. 한전과 다시 거래하려면 6개월 전에 미리 신고해야 한다는 ‘사전 통보제’도 만들었다. 기업들이 전력 시장 상황에 즉각 대응하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기후부는 “전기료가 낮을 때는 한전 요금을 쓰다가 오르면 빠져나가는 ‘체리피킹’을 막고 시장 안정을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재계에선 ‘제도 취지는 이해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직접 구매 참여의 문턱을 높여버린 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는 “산업용 전기료가 3년 반 동안 70%나 오른 것은 독점 공기업의 가격 횡포와도 같다”며 “기업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직접 구매 제도에 행정적 제약을 걸지 말고 길을 터주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