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1년 9월 27일 중국 장쑤성 난징의 한 석탄 화력발전소 냉각탑에서 하얀 수증기가 나오고 있다. 중국에서는 석탄 공급난과 당국의 강력한 탄소 배출 억제 정책 때문에 최근 전력난이 심각해졌다. /AP 연합뉴스

“지난해 우리 성(省) 기업들은 전기료를 27억6000만위안(약 5658억원)이나 아꼈습니다. 올해 중장기 전력 계약 단가는 1kWh당 0.24위안(약 49원)까지 내려갑니다.”

지난 5월 중국 간쑤성 신문판공실 기자간담회장을 찾은 간쑤성전력회사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전기료 인하 노력을 설명하며 ‘49원’을 제시했다. 한국 산업용 전기요금(179원)의 3분의 1 수준 가격이다.

간쑤성과 네이멍구 등 중국 서부 지역은 거대한 전력 거점으로 변하고 있다. 간쑤성은 주취안(酒泉)의 초대형 풍력·태양광 단지 등을 앞세워 중국 5위권 에너지 기지로 도약했다. 이 풍부한 전력을 내세워 기존의 석유화학·철강 등 중후장대 산업은 물론 데이터센터 등 미래 산업까지 빨아들이고 있다.

이를 상징하는 말이 ‘동수서산(東數西算·동쪽의 데이터를 서쪽에서 연산한다)’이다. 전력 소모가 큰 동부의 데이터센터를 전력 자원이 풍부한 서부로 옮기는 국가적 대이동이다. 실제로 알리바바, 텐센트 등의 데이터센터가 간쑤성 등지로 집결하고 있다. 24시간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이들에게 ‘49원짜리 전기’는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이다.

태양광 패널 소재 폴리실리콘, 배터리 양극재 등 전력을 많이 쓰는 소재 기업들도 공장을 옮겼다. 이곳에서 생산된 저렴한 소재와 데이터는 동부의 완제품 공장과 IT 기업으로 공급된다. 서부의 값싼 전기가 중국 산업의 경쟁력을 떠받치는 셈이다. 산업용 전기료 ‘최대 50% 할인’을 내건 성들도 적잖다.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매우 저렴한 산업용 전기료 시스템을 갖춘 중국의 산업 경쟁력은 한국과 출발선부터 다른 셈”이라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중국 간쑤성 등지의 전기 요금이 파격적으로 저렴한 것은 전력 공급이 풍부해서만은 아니다. 지난 5년간 중국 정부가 나서 전력 시장 경쟁을 확대하면서 요금을 구조적으로 끌어내린 결과다.

한전이라는 단일 창구가 정해진 요금을 부과하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대부분 기업이 전력거래소에서 경매 등을 통해 직접 전기를 산다. 이 과정에서 3만 곳 넘는 발전사가 계약을 따내려 치열한 가격 인하 경쟁을 벌인다. 덕분에 기업들은 수개월~1년 치 전력을 싸게 확보한다. 간쑤성의 전력 단가가 kWh당 0.24위안까지 떨어진 배경이다. 중국의 전력 거래는 발전량의 55%를 차지하는 석탄 화력이 기준점을 잡고, 여기에 원가 경쟁력이 높은 원자력과 수력, 재생에너지까지 사실상 모든 전력원이 경쟁에 참여하는 구조다. 한국 기업들이 치솟는 전기료에 비명을 지를 때, 중국 기업들은 국가가 만든 거대한 도매시장에서 싼 전기를 확보하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 2021년 국가 경제 컨트롤타워인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나서 ‘산업용 전기는 가능하면 모두 직거래로 싸게 팔라’는 방향을 밀어붙였다. 이에 따라 각 지방정부도 경쟁적으로 이런 메커니즘을 도입·확대했다. 수도 베이징도 지난해 12월 “산업 전기 사용자는 원칙적으로 직접적인 시장 거래에 모두 참여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래픽=백형선

◇치열한 시장 경쟁으로 요금 인하 유도

대부분의 기업이 장기 도매 계약을 맺다 보니, 시장의 20% 안팎인 소매 거래(현물 시장)에선 ‘마이너스 전기료’까지 등장했다. 태양광과 풍력발전소 등이 집중된 서부 지역 등에서는 전력 소비가 적은 특정 시간대에 전기 가격이 ‘0원’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발전사가 기업들에 오히려 돈을 얹어주고 전력을 파는 기현상이다. 그날그날의 수급에 따라 마이너스 요금이 발생하는 것이다.

장옌친 국가에너지국 부국장은 최근 “마이너스 전기 요금은 앞으로 더 흔해질 것”이라고 공언했다. 실제로 산둥성, 저장성, 네이멍구 등지에서는 마이너스 요금 발생 빈도가 늘고 있다. 베이징의 한 무역 기업 관계자는 “중부 내륙 공장 중에는 현물 시장의 초저가 전기를 활용하는 곳이 적지 않다”며 “이들의 원가 경쟁력은 한국 기업이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글로벌 에너지 통계 사이트 등을 보면 중국의 산업용 전기료는 1kWh당 평균 0.088달러(약 126.7원) 수준이다. 한국보다는 싸지만 반값 수준까지는 아닌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들은 ‘평균의 함정’이라고 말한다.

중국 지방정부는 전력 직거래에 더해 우량 기업 유치를 위해 파격적인 전기료 인센티브 정책도 펴고 있다. 예컨대 동부 제조업·수출 중심지 장쑤성은 기업 부담 완화를 위해 올해 연간 전력 계약을 전년 대비 9% 낮은 ㎾h당 0.4125위안(84.6원)으로 책정했다. 간쑤성, 구이저우성, 네이멍구 등은 지역 내 대형 데이터센터에 보조금을 줘 전기 요금을 최대 50%까지 낮춰주고 있다.

◇한국 10년 걸릴 송전망 건설, 1년 만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일부 지역의 인센티브는 데이터센터 1년 운영비를 전액 충당할 수 있을 정도”라며 “이들 지역의 산업용 전기료는 중국 동부 연안 지역보다 30%가량 저렴하다”고 보도했다. 중국에 진출한 한 한국 제조업체 관계자는 “전기 사용량이 큰 기업과 반도체·배터리 같은 주력 산업군에 속하는 기업에는 파격적인 할인 가격이 적용된다”며 “표면적으로 보이는 ‘평균 요금’과 실제로 적용되는 ‘전략 요금’ 사이에 큰 간극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송전망 초고속 건설도 값싼 전기료의 한 원동력이다. 한국에서 송전망을 100㎞ 까는데 10년 정도 걸린다면, 중국은 1~2년이면 된다. 전력망 건설 기간이 짧다는 건 그만큼 불필요한 비용 증가가 없다는 뜻이다.

세계 최대 이차전지 기업 CATL의 중국 쓰촨성 이빈(宜宾)시 공장은 이런 전략의 결정판이다. 거대한 변전소 바로 옆에 배터리 공장을 지어 양쯔강의 수력 전기를 직통으로 공급받는다. 국가가 부지와 에너지 공급망을 패키지로 제공해 송배전 효율을 극대화한 모범 공장이다. 현지에서 만난 우리 기업인은 “한국 기업들은 비효율적인 전기료 책정 방식으로 애초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이길 수 없는 경쟁을 중국과 벌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