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 전기료가 역대급으로 올랐다지만, 이는 연료비 상승분을 뒤늦게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 정작 AI(인공지능)와 탈탄소 시대를 위한 전력 인프라 비용은 고지서에 찍히지도 않았다. 한국전력이 앞으로 깔아야 할 전력망 비용만 83조원. AI 데이터센터 등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데다, 태양광·풍력처럼 지방에서 생산되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늘면서 이를 수요처가 몰려 있는 수도권으로 옮길 수 있는 전력망 확충이 필수 과제가 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진짜 전기 요금 청구서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경고하는 이유다.

정부와 한전에 따르면 2038년까지 전국 70개 노선, 총연장 3855㎞의 송전망을 까는 데 필요한 돈만 72조 8000억원이다. 2021년 추산치(29조 3000억원) 대비 4년 만에 2.5배 폭증했다. 여기에 전기를 각 가정과 공장으로 배달하는 배전망 투자비 10조 2000억원(2028년까지)을 더하면, 당장 확정된 청구서만 83조원에 달한다. 송전망은 대용량 전기를 먼 지역으로 보내고, 배전망은 송전망에서 받은 전기를 개별 사용자(공장·상가·주택)에게 나누어 보내는 역할이다.

더 큰 문제는 주민 반대와 인허가 문제로 공사가 지연되면서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전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전국 54개 송·변전 사업 중 3분의 1인 18개가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동해안~수도권 송전선로다. 강원도의 값싼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야 하는데, 종착지인 하남 동서울변전소 증설이 막히며 8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이로 인해 동해안의 저렴한 전기는 버려지고, 수도권에서는 비싼 LNG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충당한다. 이는 한전의 전력 구입 단가를 높여, 결국 전기요금 인상 압력으로 되돌아오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전우영 서울과기대 교수는 “확정된 전력망 투자비만 연도별로 나눠도 매년 10조원 이상을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 막대한 인프라 비용을 어떻게 요금에 녹일지, 전기 요금 체계를 효율적으로 개편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