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업의 경쟁력이었던 저렴한 전기 요금은 옛말이 됐다. 이제는 비싼 산업용 전기 요금이 한국 제조업과 미래 첨단 산업의 경쟁력을 좀먹는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과도한 에너지 비용을 견디지 못한 기업들이 생산을 중단하고, 급기야 제조 현장을 해외로 옮기는 일이 현실이 되고 있다. 산업용 전기료는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급등하게 됐는지, 기업들이 떠안은 전기료 부담은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다섯 개 질문을 통해 하나하나 짚어봤다.
Q1. 전기 요금, 왜 최근에 문제가 되나?
1차 원인은 2021년 시작된 글로벌 에너지 위기라는 외부 충격이었지만, 이를 키운 건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몽니’였다. 2021년 이상 기후로 인해 유럽의 바람 공장인 북해의 바람이 약해지면서 북해 주변 풍력발전소들의 발전량이 급감했다. 풍력발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유럽 각국은 액화천연가스(LNG)를 사용하는 화력발전에 눈을 돌렸다. 하지만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유럽에 대한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차단됐다. 유럽의 수요가 몰리면서 국제 LNG 가격이 폭등했고, 2020년 MMBtu(열량 단위)당 2달러를 밑돌았던 LNG 동북아 현물 가격은 2022년 무려 35배가 오른 7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문제는 정부의 대응이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해도 전기료 인상은 없다’는 도그마에 갇혀, 연료 원가 상승분을 전기 요금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임기 말인 2022년 5월까지 요금 인상은 단 한 차례에 그쳤다. 연료 가격 급등에 따른 발전 원가와 전기 요금 격차는 급격히 커졌고, 이는 고스란히 한전의 천문학적 적자로 이어졌다. 결국 윤석열 정부 들어 억눌렀던 요금 스프링이 한꺼번에 튀어 오르는 ‘요금 폭탄’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Q2. 유독 산업용 전기 요금이 더 오른 이유는?
정부가 표심(票心)을 의식해 주택용 요금 대신 산업용만 집중적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전 정상화를 위해 2022년부터 총 7차례 요금을 인상했다. 하지만 민심 이반을 우려해 마지막 두 차례는 산업용만 인상했다. 그 결과 주택용은 kWh당 총 40원 오르는 동안, 산업용은 그 두 배 가까운 73원이 올랐다.
통상 산업용 전기는 고압으로 송전하고 변압 설비도 기업이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한전 입장에선 공급 원가가 저렴하다. 반면 주택용은 전봇대와 변압기를 거쳐 저압으로 전환하는 비용이 들어 원가가 더 비싸다. 그런데도 요금은 원가가 싼 산업용(179.2원)이 주택용(155.5원)보다 훨씬 비싸지는 ‘가격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 정부로서는 전기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기업의 요금을 올리는 것이 다수 유권자의 반발을 피하면서도 한전의 적자를 줄이는 가장 빠르고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현재 산업용 전기 요금의 원가 회수율(추정치)은 130%다. 기업이 낸 돈으로 주택용 전기의 적자를 메워주는 셈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원가가 낮은 산업용이 더 비싼 것은 시장 원리에 위배된다”며 “미국·중국 등 경쟁국보다 비싼 요금 구조가 한국 제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Q3. 기업이 부담하는 요금인데 왜 중요한가?
한국 경제는 전기를 핵심 원료로 쓰는 제조업이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용 전기료 인상은 곧 ‘국가 제조 경쟁력 하락’과 직결된다. 한국의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7.6%(2023년 기준)로, OECD 국가 중에서도 아일랜드에 이어 2위다. OECD 평균(15.8%)의 두 배 수준이다.
특히 우리 경제 3분의 1을 떠받치는 제조업은 반도체·철강·석유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 대부분이다. 기업들의 전기 사용량이 큰 이유다. 실제로 삼성전자, 현대제철,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SK하이닉스 등 지난해 국내에서 전기를 가장 많이 쓴 상위 5개 기업의 전력 사용량은 전국 가정이 쓴 전기 사용량의 절반을 넘었을 정도다.
전 세계에서도 우리보다 전기를 많이 쓰는 나라는 지난해 기준 중국, 미국, 러시아, 인도, 일본, 브라질뿐이다. 모두 인구 1억명이 넘는 대국, 아니면 경제 규모가 한국을 압도하는 초강대국이다. 특히 한국을 포함해 이들 나라 가운데 중국과 한국은 산업용 전기 사용량이 국가 전체 전기 사용량의 50%를 넘는다. 유승훈 교수는 “기업이 감당 가능한 수준의 전기료가 보장돼야 공장이 돌고, 일자리와 부가가치가 창출된다”고 말했다.
Q4. 산업용 전기 요금이 다른 제조업 국가보다 앞으로도 계속 비싸게 유지된다면?
기업들이 전기료가 싼 해외로 공장을 옮기는 제조업 엑소더스(대탈출)가 가속화되고, 국내 산업 기반은 껍데기만 남는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 전기 요금은 공장 입지와 투자처를 결정하는 1순위 변수가 됐다. 특히 철강·석유화학·제련·배터리 소재처럼 전기를 대량으로 쓰는 업종은 전기료 격차가 곧바로 제품 원가 격차로 이어지고, 이 격차는 되돌리기 어렵다.
지난해 전기 요금으로만 1조원을 냈던 현대제철은 미 남부 루이지애나주에 270만t 규모의 제철소를 짓기로 했다. 현지의 산업용 전기료는 MWh당 52.8달러(2022년 기준)로 한국(95.3달러)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한 번 해외로 떠난 기업은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 단순히 공장 하나가 옮겨가는 게 아니라, 그 공장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협력사와 물류, 소재·부품 공급망이 함께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연구·관리 조직만 남거나, 저부가가치 공정만 남는 질적 공동화도 일어난다.
글로벌 차원의 AI 데이터센터 유치전에서도 한국이 밀리게 된다. 막대한 전력을 안정적이고 싸게 공급받지 못한다면, 글로벌 빅테크들이 굳이 전기료 비싼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지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Q5. 산업용 전기료가 이처럼 중요하다면 당장 내릴 수는 없나?
원가를 반영한다면 내리는 게 맞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은 한전의 빚이다. 한전의 총부채는 206조2000억원(올 3분기 기준)으로, 매일 물어야 하는 이자만 120억원이다. 현재 주택용·농업용 전기는 원가보다 싸게 팔고 있어 팔수록 손해다. 원가보다 비싸게 받는 산업용 전기 요금이 한전의 산소호흡기 역할을 하며 적자를 메우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적 딜레마도 있다. 산업용 요금을 내려 정상화하려면, 필연적으로 그만큼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주택용 요금을 올려야 한다. 정연제 서울과기대 교수는 “주택·교육·농사용 등의 요금은 원가에 크게 미달한다”며 “산업용 인하와 주택용 등의 인상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정부의 친환경 정책 비용도 청구서로 날아오고 있다. 값비싼 재생에너지 비율을 늘리고, 이를 연결할 송전망을 까느라 막대한 비용이 추가로 들기 때문이다.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는 “미·중은 화석연료 발전을 늘려서라도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하는데 우리는 친환경 명분에 묶여 있다”며 “에너지 정책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