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발전과 통상 문제를 총괄하는 정부 부처인 산업통상부가 12년 만에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최근 중요성이 커진 경제 안보 분야의 컨트롤타워를 신설하고, 산업계 화두인 인공지능 전환(AX) 전담 기구를 신설했다. 최근 에너지 정책 기능을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넘기면서 부처명을 기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산업통상부’로 바꾼 데 이어, 이번 개편을 통해 AI 산업 혁신과 통상 리스크 등 주요 현안에 한층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조직으로 재정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석유화학 구조조정이나 한·미 무역 합의 이행을 더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한 보강 역시 이뤄졌다”고 말했다.
◇‘경제 안보’ 컨트롤타워 신설
산업통상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산업통상부 직제 일부 개정령안’이 의결됐다고 23일 밝혔다. 이번 조직 개편은 2013년 당시 지식경제부에 외교통상부의 통상·교섭 기능이 이관돼 ‘산업통상자원부’가 출범한 이래 가장 큰 규모다. 시행은 30일부터다.
가장 큰 변화는 경제 안보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인 ‘산업자원안보실’을 신설한 것이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산업 공급망, 무역 안보, 자원 등의 기능을 한데 모은 것으로, 산업부에 실(室)이 새롭게 만들어진 것은 14년 만이다.
1급 공무원이 담당하는 실장 아래에는 자원산업정책국과 산업공급망정책관, 무역안보정책관이 배치됐다. 산업부 관계자는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 같은 경제 안보 위협 사태가 발생할 경우 한층 밀접한 협력과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며 “자원 공급망 확보·강화를 비롯해 수출 규제 법안 분석, 대응 등을 책임지는 조직”이라고 설명했다.
AI를 전담하는 ‘산업 인공지능 정책관’을 신설하는 등 산업 경쟁력 강화에 한층 힘을 실은 것도 특징이다. 산업 현장 전반에 인공지능을 빠르게 확산시켜 생산성 혁신을 꾀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목표다. 정책관 산하에는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산업 인공지능 정책과’를 신설했다. 또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힘을 싣고 있는 ‘M.AX(제조업 인공지능 전환)’를 담당하는 ‘제조 인공지능 전환 협력과’를 비롯해 피지컬AI, 바이오 AI를 전담하는 과가 각각 배치됐다. 당초 행정안전부는 산업부 내 AI 전담국 신설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지만, ‘M.AX’를 역점 사업으로 추진 중인 김정관 장관이 조직 신설을 관철한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산업 규제 혁신과’도 신설된다. 이 조직은 자율주행, 인공지능 등 첨단 산업에 걸림돌이 되는 ‘손톱 밑 가시’를 뽑고, 새로운 실험을 마음껏 해볼 수 있는 ‘규제 샌드박스’를 담당한다. 현 정부의 당면 과제인 석유화학 산업 구조 개편과 고(高)부가가치화를 담당해왔던 ‘화학산업팀’은 이번에 ‘화학산업과’로 조직이 격상됐다. 또 지난해 방산 수출을 지원하기 위해 임시로 만들었던 ‘첨단민군협력과’는 이번 개편에서 정식 조직이 됐다.
◇기후부와도 소통·협력 강화
통상 기능도 한층 강화된다. 산업부에는 올해 한·미 양국 정부가 체결한 무역 합의를 바탕으로 한 대미 투자, 한·미 산업 협력 등을 전담하는 ‘한미통상협력과’가 신설된다. 통상 환경 변화를 반영해 기존 조직 명칭에 있던 ‘자유무역협정’ 대신 ‘통상협정’을 넣기로 했다. 과거에 비해 FTA(자유무역협정)의 의미가 퇴색되고 통상 업무의 범위가 공급망, 비관세 장벽 등으로 확대된 현실을 반영한 조치다.
에너지 정책을 맡은 기후부와의 소통, 협력 강화를 위해 ‘산업에너지협력과’도 신설하기로 했다. 이 조직은 기후부가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 산업계 입장을 최대한 대변하는 등 직접적인 소통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에너지 정책 이관 이후 산업용 전기 요금 급등 등을 우려해 온 산업계에서는 이 같은 변화를 환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산업기반실에 있던 지역경제정책과 중견기업정책 기능을 산업정책실로 옮겨, 지역·산업 성장 정책을 유기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에너지 기능 이관 후에도 남은 ‘원전 수출’ 기능은 아예 ‘수출입’ 기능을 전담하는 무역투자실로 소속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