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전기 요금 고지서만 문제인 게 아니다. 첨단 연구실들은 돈을 줘도 전기를 더 끌어올 수 없는 구전난(求電難)에도 시달리고 있다. AI 연구 수요는 폭발하고 캠퍼스로 들어오는 전력망 용량은 한계에 다다랐는데, 송전망 부족과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증설 채널이 막힌 탓이다.
서울대 관악캠퍼스는 현재 ‘전력 과부하’ 상태다. 지난 10년간 전력 사용량이 28% 급증하면서, 이미 공급 용량 대비 사용량이 75%까지 차올랐다. 서울대 관계자는 “80%를 넘으면 예비 전력이 사라져 정상적 연구가 어렵다”고 했다.
서울대는 한전과 협의해 관악캠퍼스 전력 용량을 2030년까지 크게 늘리고 시흥캠퍼스에 데이터센터를 지어 GPU 서버 일부를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시흥 분산 계획은 전자파와 소음을 우려한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입찰 공고조차 못 내고 있다. 학교 측은 “지금 속도라면 2030년 시흥 분산 목표는 불가능하다”며 발만 구르고 있다.
교수들은 “AI 연구는 속도전인데 대체 2030년까지 어떻게 버티느냐”는 하소연이 터져 나온다. 이제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장은 “연구 용역을 따와도 서버를 증설할 공간과 전력 용량이 없어 서버를 들여오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이런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AI 연구는 지금으로선 거의 손 놓으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성균관대도 지난해 수원캠퍼스 전력 용량을 50% 늘렸지만 연구 수요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지형 성균관대 AI대학원장은 “논문 작성이 몰리는 시기면 서버가 풀가동되면서 연구실 온도 경보가 울린다”며 “필요한 서버를 끌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4~5년 전부터 전력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더니 최근엔 ‘이제 정말 급하다’는 분위기”라고 했다. 포스텍 역시 여름 기준 전력 포화도가 67%로 이미 위험 수위인데, 캠퍼스 확장이 완료되면 85%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대규모 통합 데이터센터가 필요하지만 신규 송전 없이는 어렵다”는 게 학교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학 전력난은 결국 송배전망 부족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동해안 발전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는 길목인 경기 하남 동서울변전소 증설이 주민 반대로 멈춰 선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2038년까지 113조원이 필요한 송배전망 확충에 ‘국민펀드’ 등을 활용해 속도를 높인다는 구상이지만, 구체적 해법을 두고 여전히 논쟁 중이다. 하남 같은 병목 구간은 국민펀드가 주체가 돼 민간 건설사에 설계·시공을 맡기는 안도 나오지만 민영화에 대한 반발이 나올 수 있고, 주민 설득 과정에서 보상비 등 비용이 상승할 수 있다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한전만으로는 이 난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송배전망 건설이 지연돼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에 차라리 예산이 더 들더라도 민간에 맡겨 속도를 높이는 것이 국가적으로 이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