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사업청은 7조8000억원 규모 한국형 차기 이지스 구축함(KDDX) 사업을 국내 조선 양대 기업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경쟁 입찰을 통해 내년 말까지 정하기로 22일 결정했다.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의 주축이자 라이벌인 두 회사의 경쟁은 더 격화될 전망이다. 사진은 HD현대중공업(위)과 한화오션이 만들고자 하는 KDDX 구축함 조감도./ HD현대, 한화오션

약 2년 가까이 표류해 온 한국형 차기 이지스 구축함(KDDX) 도입 사업이 22일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두 라이벌 기업의 경쟁 입찰을 통해 최종 사업자를 정하기로 결정됐다. 하지만 이 같은 결론이 나오기까지 기업끼리 첨예한 갈등을 빚기도 했고, 가점이나 감점 적용 등 평가 기준을 두고도 혼선이 여전하다. 특히 이날 발표 약 2주 전인, 지난 5일 이재명 대통령이 KDDX 사업과 관련해 HD현대중공업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하는 일까지 생기면서 “실제 사업자 선정까지 시간이 더 걸리고 논란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논란 큰 7조짜리 KDDX 사업

지난 2011년 시작된 KDDX 사업은 7조8000억원을 들여 6000t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을 2030년 실전 배치하는 것이 목표였다. 국산 기술로 전기 추진 시스템과 레이더 등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선체를 만들고, 각종 자동화 설비를 탑재해 노후화하고 있는 해군의 주력 광개토대왕급 구축함을 대체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사업 규모가 크고, 한국의 차세대 구축함을 만든다는 상징성 탓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논란도 커지면서 일정도 2년 가까이 지연된 상태다.

군함 건조는 보통 개념 설계, 기본 설계, 상세 설계 및 선도함(1번함) 건조, 후속함 건조 순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대략적인 기획에 해당하는 개념 설계는 2012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구체적 성능을 정하는 기본 설계는 2020년 HD현대중공업이 각각 수주하면서 갈등이 커졌다. 특히 과거에는 기본 설계 업체가 상세 설계를 맡는 게 관행이라, 뒤늦게 설계를 따낸 HD현대 측 수주가 유력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2022년 무렵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KDDX 기본 설계 과정에서 대우조선해양의 개념 설계 자료를 몰래 촬영·유출한 혐의로 기소돼 2022년과 2023년 유죄 판결이 차례로 확정된 것이다. 한화오션은 이를 문제 삼아 수의계약에 반대하며 경쟁 입찰을 주장해왔다. 사업자 선정 방식은 방위사업청의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가 결정한다. 방산 업계에선 한화오션 측의 주장에다 지난 5일 이재명 대통령의 “군사 기밀을 빼돌려 처벌받은 데에 수의 계약을 주느니 하는 이상한 소리가 나온다”는 발언 등까지 겹치면서 이날 방추위 위원들 결정에 영향을 준 것 같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픽=김성규

◇HD현대의 감점 여부가 관건

이날 방사청이 결정한 경쟁 입찰 방식은 비교적 단순하다. 이전 방사청 군함 입찰은 크게 가격(20점), 기술(80점)으로 100점 만점으로 평가하는데, 대부분 소수점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 하지만 HD현대중공업은 한화오션이 문제 삼았던 군사 기밀 유출 사건 유죄 판결에 따라 감점을 적용받는 게 변수다.

원래 이 감점은 첫 유죄 확정 판결이 나온 2022년 11월부터 지난 11월까지 3년만 적용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방사청은 지난 9월 “법률 추가 검토 결과, 2023년 유죄가 확정된 사건은 별도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면서 “내년 말까지는 감점 1.2점을 추가로 적용한다”고 밝혔다.

HD현대중공업은 둘 다 같은 사건인 만큼 지난 11월 감점 적용이 끝날 것으로 봤는데, 돌연 감점 기간이 늘어난 셈이다. 2023년 한화오션이 따낸 해군 차기 호위함(FFX) 경쟁 입찰에서 HD현대중공업이 0.1422점 차이로 탈락했을 만큼 1.2점은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다만 아직 방사청은 이 조치가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란 입장이다. 그러나 이 벌점으로 HD현대가 앞으로 경쟁 입찰에서 질 경우 소송도 가능한 상황이라는 게 업계 반응이다. 방산 업계 관계자는 “대통령 발언에다, 감점 논란까지 겹치면서 과연 절차가 공정했는지 두고두고 논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감점 변수를 포함해 최종 사업자 선정까지 절차가 남았기 때문에 두 회사는 이날 원론적 입장을 냈다. HD현대중공업은 “방추위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그간 지켜져 온 원칙과 규정이 흔들린 데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며 “향후 절차가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한화오션은 “사업자 선정 방식이 이제라도 결정된 것은 다행스러운 결과”라며 “향후 KDDX 사업 수주를 통해 대한민국 해군력 증강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두 회사 모두 내부적으로 경쟁 입찰이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한 회사 관계자는 “경쟁 입찰이라면 결국 사업비를 낮추는 저가 경쟁 국면으로 갈 가능성이 있는데, 결국엔 명예는 남지만 이익은 남지 않는 승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