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글로벌 데이터센터 유치전이 ‘총성 없는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쏟아붓는 사이, 아랍에미리트(UAE)와 말레이시아 등 신흥국들은 한국의 절반도 안 되는 ‘초저가 전기요금’을 무기로 글로벌 빅테크들을 쓸어 담고 있다. 글로벌 국가들이 데이터센터 유치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명확하다. AI 시대에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서버 창고’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각국은 보조금과 저렴한 전기를 무기로 ‘디지털 영토 확장 전쟁’에 뛰어들었지만, 한국은 비싼 전기요금 탓에 이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22일 글로벌 신용보험사 코페이스에 따르면, AI 확산에 따라 2030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 용량은 130GW(기가와트)로 지난해 대비 2.3배 폭증할 전망이다.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강대국들의 물량 공세는 필사적이다. 미국은 주(州)마다 최대 1조원(6700만달러)에 달하는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뿌리고 있다. 중국은 2021년부터 인프라 구축에만 1400조원(1000억달러) 이상을 투입하고 있다. 지원 대상에는 데이터센터 운영에 꼭 필요한 AI 칩을 국산화하기 위한 연구도 포함된다. EU(유럽연합) 역시 2030년까지 340조원을 투입해 자체 AI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국토 면적이 한국의 70%에 불과한 아일랜드는 12.5%라는 유럽 최저 법인세를 미끼로 데이터센터 140여 개를 유치했다.
저렴한 전기료를 앞세운 신흥국들의 약진은 무서울 정도다. 24시간 막대한 전력을 쓰는 데이터센터 특성상, 싼 전기 요금은 그 어떤 보조금보다 강력한 유인책이 된다. 아랍에미리트(UAE)의 데이터센터용 전기 요금은 kWh당 약 73원으로, 미국 평균(약 132원)의 절반 수준이다. 말레이시아도 60~100원대의 저렴한 요금을 자랑한다. 이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 덕분에 엔비디아와 오픈AI는 UAE와 손을 잡았고,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는 말레이시아에 둥지를 틀었다.
한국은 고비용 구조에 갇혀 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 일반용 전기 요금 평균은 kWh당 172.99원이다. UAE나 말레이시아보다 2배 이상 비싸고, 미국보다도 높다. 경쟁국 대비 보조금 규모도 크지 않은데, 핵심 비용인 전기료가 비싸니 빅테크들은 한국을 외면하고 있다.
이런 탓에 데이터센터 가동 규모도 주요국의 10%에도 못 미치고 있다. 올해 한국의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약 8TWh(테라와트시)로, 중국(100TWh)의 12분의 1, 미국(180TWh)의 22분의 1에 불과하다.
전우영 서울과기대 교수는 “AI 시대를 대비한 망(網) 투자는 골든타임을 놓치면 회복하기 힘들다”며 “입지 조건이 좋은 미국·중국보다 전기요금마저 비싸서는 경쟁이 불가능하다. 최소한 경쟁국 수준으로 요금 부담을 낮추는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한국은 AI 변방으로 밀려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