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AI(인공지능) 3대 강국 도약’을 국정 과제로 내걸었다. 하지만 AI 산업과 연구·개발 현장에서는 급등한 전기 요금이 AI 대전환의 발목을 잡는 ‘통행세’로 작용해 걸림돌이 되고 있다.
22일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국전력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네이버·카카오·KT 등 국내 ‘빅3’ IT 기업이 데이터센터 가동 등에 사용한 전력량은 2020년 447GWh(기가와트시)에서 지난해 783GWh로 약 7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기 요금은 452억원에서 1155억원으로 156% 폭등했다. 데이터센터에 적용되는 일반용 전기 요금이 최근 4년 새 약 31% 급등하면서, 요금이 두 배 이상 가파른 속도로 불어난 것이다.
AI 시대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는 24시간 꺼지지 않는 서버 가동과 냉각 시스템 운영에 막대한 전력이 들어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린다. 앞으로 전기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전기료 부담을 덜어줄 대책이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 ‘AI 대전환’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다. IT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빅테크들은 전력 확보 전쟁을 벌이는데, 한국은 전기료 부담 탓에 공격적인 인프라 확장이 주춤거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래 인재를 길러내는 대학도 전기료 직격탄을 맞고 있다. AI 대학원을 운영하는 서울대는 지난해 전기 요금으로만 약 315억원을 냈다. 4년 새 전기 사용량은 13% 늘었는데 납부한 전기 요금은 62%나 늘었다. 같은 기간 교육용 전기요금이 약 38% 급등한 탓이다. 산업용보다는 인상 폭이 작지만, 등록금 인상이 쉽지 않은 대학들은 전기료 탓에 고정비 부담이 빠르게 커지면서, 정작 연구비를 줄여야 할 처지다. 연간 수천만원씩 드는 전기료를 개인 연구비로 내고, 연구 조교 수를 줄이는 대학 교수들까지 생겨날 정도다.
전기료로 인한 기업과 대학의 어려움은 커지는데, 22일 한전은 내년 1분기 전기 요금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200조원을 웃도는 한전의 부채를 감안한 결과다. 한 에너지 분야 전문가는 “데이터센터 전용 요금 제도를 만들거나, 한전이 아닌 제3자에게 전기를 사들이는 전력 직구를 확대하는 등 요금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미래 산업이 발목 잡힐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