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추진하는 미국 테네시 제련소 사업이 이번 주 첫 분수령을 맞는다.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과 경영권 분쟁 중인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이 사업과 관련해 낸 가처분 사건에 대해, 이르면 이번 주 법원이 결론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22일, 늦어도 23~24일에는 결정이 나올 전망이다.
오는 26일 마감되는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가 핵심 쟁점이다. 고려아연과 미 전쟁부(국방부) 등은 이 사업을 위해 미국 합작법인(크루서블 JV)을 세운 뒤, 이번 유상증자에 JV가 참여하게 해 고려아연 지분 약 10%를 확보하게 할 계획이다. 쟁점은 이 유상증자가 성공하는 경우 JV가 확보할 10% 지분이 최 회장의 경영권을 더 탄탄하게 해주는 ‘캐스팅보트’가 된다는 점이다.
법원 결정을 앞두고 주말인 20~21일에도 양측은 공방을 이어갔다. MBK 등은 유증을 저지하기 위한 공세를 폈고, 고려아연 측은 여기에 잇따라 반박문을 냈다. 법원 결정을 앞두고 대내외적인 명분을 쌓기 위한 장외전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美 측 지분 10% 타당성 싸움
테네시 제련소 사업은 고려아연과 미국 전쟁부 등이 참여해 만드는 크루서블JV가 핵심이다. 이 JV는 전쟁부가 의결권 40.1%를 가진 최대 주주로, 테네시 제련소 운영에 필요한 인허가나 원료 공급, 건설 프로젝트 관리 등을 맡을 예정이다. 제련소 자체는 고려아연이 지분 100%를 갖고 별도로 운영한다. 대신 양측은 JV가 유상증자를 통해 약 2조8000억원을 투입해 고려아연 지분 10%를 가진 주요 주주가 되고, 고려아연 경영에 참여하기로 합의했다.
유상증자가 마무리되면 전체 발행 주식이 늘어나면서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영풍 측 지분은 44%에서 40%로, 최 회장 측 현재 지분은(우군 포함) 32%에서 29%로 각각 희석된다. 그러나 JV가 유증으로 확보한 10%가 더해지며 최 회장 측 지분은 최종적으로 39%까지 오른다.
그래서 이 조치를 두고 양측이 법적 공방까지 벌이고 있는 것이다. MBK 측은 “미국 제련소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지분을 넘기는 게 ‘경영권 방어용’이라고 연일 공격하고 있다. 21일 MBK 측은 “고려아연이 미국 측과 맺은 계약은, 합작 법인 설립 최종 계약이 2년 내 체결되지 않을 경우에도 JV가 유상증자로 가져간 고려아연 지분 10%를 그대로 보유하게 되는 비정상적 구조”라고 주장했다.
고려아연은 즉각 반박했다. 미국 정부가 고려아연 지분 인수를 위해 수조 원을 투입한 상황에서 ‘2년 동안 최종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수 있고, 합의서도 해지될 수 있다’는 영풍 측 주장은 비합리적”이라며 “고려아연 지분 10%를 미국 정부가 사실상 취득하는 것은 고려아연과 ‘전략적 파트너’가 돼, 전폭 지원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영업 비밀 누설 고소까지… 갈등 첨예
양측은 앞으로 제련소 사업이 성공했을 때 미 측이 지분 약 34.5%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신주인수권(워런트)에 대해서도 다툰다. 영풍 측은 “중요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정정 공시’ 대상”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고려아연 측은 “업계 통상적인 수준이며 제련소 경영은 고려아연이 맡는 만큼 문제가 없다”고 맞선다. 지난 20일 고려아연 측은 “임시 이사회에서 배포한 미 제련소 사업 비공개 자료가 유출된 의혹이 있다”며 영풍과 MBK 측 이사 2명을 영업 비밀 누설 등 혐의로 경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가처분 결정에 따라 경영권 분쟁도 요동친다. 법원이 고려아연 손을 들어줄 경우, 사업이 더욱 속도를 내면서 최윤범 회장의 경영권은 더욱 안정될 전망이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는 최 회장 측 11명, 영풍 측 4명인데, 이번 유상증자로 지분이 대등해져 영풍 측의 이사회 진입을 대폭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처분이 인용될 경우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프로젝트 지연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 제련소 사업은 합작법인을 통한 미국 측의 지분 참여를 전제로 미 상무부 보조금 등이 계획에 반영돼 있는데, 이런 굵직한 사안이 모두 원점부터 다시 논의돼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