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조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 2년간 표류 끝에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경쟁 입찰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결정됐다. 양 사 간 과열 경쟁과 공정성 논란 등으로 사업이 크게 지연된 만큼 정부는 내년 말까지 계약을 모두 마무리하기로 했다.
방위사업청(방사청)은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를 열고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지명경쟁 방식을 통해 KDDX 상세 설계 및 선도함 건조 수행 업체를 결정하는 것으로 만장일치 의결했다고 밝혔다. 방사청 관계자는 “(방추위에서) 경쟁을 통해 공정성을 담보하는 것이 효율적이겠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방사청은 상세 설계 및 선도함 건조 기본 계획을 다시 작성해 방추위에 안건으로 올릴 예정이다. 늦어도 내년 1분기 안에 상정한다는 계획이다. 방추위 의결이 완료되면 방사청은 입찰 공고를 낸다. KDDX가 방산 물자이기 때문에 방산 업체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지정업체로 입찰에 참여한다. 방사청 관계자는 “최종적으로 내년 말까지 계약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 수의계약서 경쟁입찰로… 방사청 “적법성과 공정성 등 고려”
KDDX 사업은 2030년까지 차세대 구축함 6척을 건조하는 사업으로, 총사업비가 7조8000억원에 달한다. 2028~2030년 퇴역 시점에 이르는 노후 함정을 대체하는 것이 목표다. 통상 함정 사업은 개념 설계→기본 설계→상세 설계→선도함 건조→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된다. 개념 설계는 2012년 한화오션이, 기본 설계는 2020년 HD현대중공업이 담당했다.
방사청은 당초 상세 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을 지난해 7월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기본 설계를 담당한 회사가 상세 설계 및 선도함 건조 수의 계약을 맺는 것이 관행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HD현대중공업이 이를 수주하는 것이 유력했다. 하지만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2013~2014년 KDDX 관련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회사 차원의 보안 감점을 받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방사청은 대표나 임원의 관여 정황이 없다고 보고 KDDX 사업 입찰 참가를 허락했지만, 한화오션은 이에 문제가 있다며 양사가 제안서 평가로 경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화오션은 방사청이 내놓은 지난해 10월 ‘공동 설계, 동시 발주, 동시 건조’ 절충안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방사청은 올해 초 다시 수의계약으로 입장을 정했다. 사업 연속성과 전력화 시기 등을 감안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일 “군사기밀 빼돌려 가지고 처벌받은 데다가 수의계약을 주느니 뭐 이상한 소리나 하고 그러고 있던데, 그런 거 잘 체크하라”고 언급하면서 기류가 바뀌었다. 업계에서는 결국 이 대통령이 방사청의 수의계약에 사실상 제동을 걸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이날 방사청 관계자는 “방추위 안건은 지난 4일 분과위원회에서 결정됐고, 진행 과정 중에서 위원들의 서류 보고를 거쳐왔다”며 “적법성과 공정성 등 여러 사안을 고려해 위원회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 관건은 HD현대 보안 감점… HD현대 “원칙·규정 흔들려 아쉬워"
이제 관건은 HD현대중공업이 기밀 유출로 인한 보안 감점을 받을지 여부다. 방사청 관계자는 “1.8점의 보안 감점은 지난 11월 19일부로 종료됐다”며 “그 이후 추가적인 보안 감점에 대해선 입찰 공고가 나오고 제안서 평가를 할 경우 해당 업체가 청에 문의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원래대로면 기본 설계를 맡은 HD현대중공업이 다른 평가에서 한화오션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보안 감점이 적용될 경우 결과가 뒤바뀔 수 있다.
HD현대중공업이 보안 감점을 또 받게 되면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이 경우 사업이 재차 지연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방사청 관계자는 “청에서도 충분히 우려 사항을 알고 있다”며 “그런 사안에 대해선 전력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사업자 선정방식이 이제라도 결정된 것은 다행스러운 결과”라며 “한화오션은 향후 KDDX 사업 수주를 통해 대한민국 해군력 증강에 기여하고, 2030년대 K-해양방산을 이끌 수 있는 명품 함정을 건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방추위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그간 지켜져 온 원칙과 규정이 흔들린 데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며 “방추위의 결정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할 계획이며, 향후 절차가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