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인천 동구 송현동에 있는 동국제강 인천 공장의 전기로 주변에서 한 직원이 잠시 쉬고 있다. 평소 가동 중인 전기로 등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공장 내부는 대낮처럼 밝지만, 이날 이 주변은 전기로가 가동을 멈춘 탓에 손전등을 켜고 다녀야 할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동국제강은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철강 산업이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산업용 전기료까지 급등하자 수시로 전기로를 끄고 있다. /장련성 기자

삼성전자 등 국내 전력 소비 상위 30대 기업의 지난해 전력 사용량은 전년과 비슷했지만, 전기료는 2조원 가까이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3년 반 사이 산업용 전기 요금이 70%나 치솟은 여파다. 한국 경제의 엔진인 제조업에 ‘징벌적 요금 청구서’가 날아들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탈원전·재생에너지 중심’의 현 정부 에너지 기조하에서 고비용 구조가 고착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전기료 때문에 한국을 등지는 ‘제조업 엑소더스’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21일 본지가 입수한 지난해 전력 사용량 상위 30대 기업의 전기 요금 부담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지난해 연간 전력 사용량은 9만8552GWh(기가와트시), 전기료는 16조1109억원이었다. 전년인 2023년 9만7766GWh를 쓰고, 14조2963억원의 전기료를 낸 것과 비교하면 전기는 불과 0.8%(786GWh) 더 쓰고 전기료는 무려 12.7%(1조8146억원) 더 낸 셈이다.

그래픽=이진영

한국전력에 따르면 2013년 ㎾h(킬로와트시)당 107.3원으로 처음 100원을 돌파한 산업용 전기료는 2023년 153.71원으로 올랐고 지난해 168.17원, 올 6월 179.23원으로 계속 급등하고 있다. 그로 인해 한전의 산업용 전기 요금 원가 회수율은 130%를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이 원가보다 30% 이상 비싼 요금을 내며 한전의 적자를 보전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기 요금 부담은 특히 대기업에 집중되고 있다. 정부가 산업용 전기 요금 중에서도 대기업이 주로 쓰는 산업용 ‘을’ 요금을 중소기업 위주인 산업용 ‘갑’보다 더 큰 폭으로 올리고 있는 것이다. 치솟는 전기 요금에 생산을 중단하는 기업들도 나오고 있다. 전기를 많이 쓰는 업종에선 전기료가 저렴한 해외로 아예 생산 시설을 이전하거나 이전을 검토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 LG화학·현대제철 등 20개 기업은 한전을 거치지 않고 발전소에서 직접 전기를 사는 전력 직구에 나섰고, 동국제강 인천공장은 팔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 속에 생산 중단 기간을 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