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전기 요금 부담이 과도하게 커지자, 정부가 태양광 발전량이 넘치는 낮 시간대 전기 요금을 낮추고 밤 시간대 전기 요금을 높이는 방안을 새로 제시했다. 하지만 정작 전기 요금 부담이 큰 ‘전기 다(多)소비 업종’ 기업들 사이에서는 “공장을 밤낮 없이 24시간 돌려야 하는데 결국 조삼모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 17일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산업용 전기 요금의 ‘계시별(계절·시간별) 요금제’를 새로 개편하는 방안을 보고했다. 한국전력은 현재 산업용 전기 요금 수요가 몰리는 낮 시간대 피크 타임 요금을 높게, 발전단가가 비교적 저렴한 원자력·화력 발전소로 전기를 충당하는 밤 시간대 요금은 낮보다 35~50% 싸게 유지해왔다. 낮 시간대에 몰리는 소비를 분산해 전력망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의도한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기조와 맞물려, 앞으로는 태양광 발전으로 전기가 남아도는 주말·휴일과 평일 낮 시간대 요금을 낮춰 수요를 유도하게 된다. 낮에 주로 공장을 돌리는 기업들의 전기 요금 부담을 경감하는 효과를 기대하면서, 짧은 시간에 산업용 전기 요금이 급격히 올랐다는 비판 여론을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기후부는 한전과 협의해 계절별 요금을 조정하는 방안도 같이 검토할 계획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달가운 분위기가 아니다. 밤낮 구분 없이 24시간 공장을 돌려야 하는 주물업 등 뿌리 산업이나 에너지 다소비 업종인 철강·석유화학 업계에서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한 주물 기업 대표는 “주물업은 기본적으로 초고온의 용해로에 철을 녹이고 이를 굳히는 과정이 반복되는 만큼, 중간에 가동을 멈추면 효율이 떨어져 24시간 가동이 불가피하다”며 “그다지 큰 효과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비교적 전기 요금이 높았던 낮 시간을 피해 야간 가동을 늘리던 일부 기업은 조업 시간 조정 등을 검토해야 할 판이다.
전문가들도 계절·시간별 요금제 개편이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조치인 것은 맞지만, 벌써부터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기 요금 체계를 개편하는 것은 한계가 크다고 지적한다.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는 “전기 공급이 늘어나는 낮 시간대에 전기 요금을 낮춘다는 취지 자체는 공감한다”면서도 “AI(인공지능) 시대에 전력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간헐성이 큰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기 요금 체계를 구축하면 3~4일만 악천후가 닥쳐 태양광 발전이 급감해도 전력난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도입도 서두르기로 했다. 김 장관은 이날 업무보고에서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곳이 지역에 분산되도록 ‘지역별 요금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에 더 싸게 전력을 공급한다는 ‘지산지소(地産地消·지역 생산, 지역 소비)’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지난 16일 민주당 지도부와 정책 간담회를 갖고 “지역으로 내려간 기업들의 요금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며 이 제도의 도입 필요성 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