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치솟았던 국제 연료비가 하향 안정화하면서 전기 요금 인하 여력이 발생했지만, 전력 당국은 내년 1분기(1~3월)에도 현 전기료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산업용 전기료 급등에 고통받는 기업 신음보다는 한국전력 재무구조 개선을 택한 것이다.
한국전력은 22일 “2026년 1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이전과 동일한 ㎾h(킬로와트시)당 +5원으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우리가 내는 전기 요금은 ‘기본요금, 전력량 요금, 기후환경 요금, 연료비 조정단가’를 모두 합친 금액이다. 이 가운데 연료비 조정단가는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분을 분기별로 전기 요금에 반영하기 위해 2021년 1분기부터 시행 중인 제도다.
해당 분기 직전 3개월간 유연탄·액화천연가스(LNG)·브렌트유 등의 평균 가격을 토대로 ㎾h당 ±5원 범위에서 산정한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많이 올랐다면 ㎾h당 최대 5원까지 더 받고, 반대로 내렸다면 5원까지 덜 받도록 한 것이다.
한전은 코로나 팬데믹, 공급망 차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등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던 2022년 3분기부터 지금까지 줄곧 최대치인 +5원을 연료비 조정단가에 반영해오고 있다. 에너지 가격은 2023년 이후 안정화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이와 무관하게 최대치인 +5원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도 한전이 내부적으로 계산한 적정 조정단가는 ㎾h당 -13.3원이었다. 한 번에 최대 -5원까지 반영 가능한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 3개 분기 동안은 조정단가를 낮춰야 한다고 계산한 것이다. 그러나 주무 부처인 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는 한전에 “연료비 조정단가를 이전과 동일하게 +5원으로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3년 전 국제 연료비 급등 당시 한전 부채가 200조원 넘게 쌓였기 때문이다. 한전 부채는 올해 3분기 기준 205조3402억원이고, 누적 영업적자는 23조원이다. 정부는 에너지 가격 변동분을 반영한다는 제도 취지보다는 한전 재무 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이 덕에 한전은 올해 1~3분기 누적 11조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중이다.
‘연료비 조정단가 현행 유지’가 반드시 전기 요금 동결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연료비 조정단가를 유지했어도, 정부는 나머지 다른 요금 구성 요소인 전력량 요금이나 기후환경 요금 등을 조정해 전기 요금 인상 또는 인하를 추진할 수 있다. 다만 기후부 관계자는 “현재 전기료 조정과 관련한 별도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정부가 당분간 전기 요금을 그대로 내버려둘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3년 반 동안 70%나 급등한 산업용 전기료에 신음 중인 주요 제조업체들의 고통도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2013년 ㎾h당 107.3원이던 산업용 전기료는 2023년 153.71원으로 올랐고, 올해 6월에는 179.23원까지 급등했다.
이로 인해 한전의 산업용 전기 요금 원가 회수율은 130%를 넘어서는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들이 원가보다 30% 이상 비싼 요금을 내며 한전의 적자를 보전하고 있다는 뜻이다. 시장 전망대로 기후부가 현 요금 수준을 계속 유지하면, 내년 1분기 기준 주택용 전기 요금은 11분기 연속, 산업용 요금은 5분기 연속 동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