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가운데) 삼성전자 회장이 22일 경기도 기흥의 첨단 반도체 연구·개발(R&D) 센터인 'NRD-K'의 클린룸(반도체 생산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재계에선 이날 이 회장의 사업장 공개 방문을 두고, HBM 부진으로 위기론에 휘말렸던 삼성이 자신감을 찾은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2일 삼성 반도체 경쟁력의 핵심인 경기도 기흥과 화성 캠퍼스를 찾아 반도체 생산 및 기술 개발 상황을 점검하고 직원들을 격려했다.

이 회장은 평소에도 수시로 삼성전자 등 계열사 사업장을 찾는다. 하지만 이날은 특히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평소 한 번에 2~3시간 정도, 비공개로 현장을 찾던 것과 달리, 이 회장은 이날 오전부터 오후 늦게까지 사실상 하루를 모두 할애해 반도체 사업장에 머물렀다. 삼성도 이 사실을 이례적으로 외부에 공개했다. 삼성이 이 회장의 국내 사업장 방문을 알린 것은 작년 2월 미래 먹거리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 사업장을 찾은 이후 1년 10개월 만이다.

재계에선 올 초 인공지능(AI) 핵심 메모리 반도체인 HBM(고대역폭 메모리)의 기술력 부진으로 ‘위기론’에 휘말렸던 삼성이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는 신호로 주목하고 있다.

◇반도체 미래와 현재 기술 점검

이 회장은 이날 경기도 기흥과 화성의 반도체 캠퍼스를 찾아 ‘삼성 반도체 기술력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점검했다.

이 회장이 오전에 찾은 기흥캠퍼스 NRD-K(New Research & Development–K)는 삼성이 미래 반도체 기술 선점을 위해 2022년 착공한 10만9000㎡ 규모의 최첨단 복합 연구·개발(R&D) 단지다. 메모리를 비롯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스템 반도체 등 사업 전반에 걸쳐 기술적 한계 극복을 위해 연구 개발 역량을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반도체 R&D의 최전방’인 셈이다. 이 회장은 2022년 기공식은 물론 이듬해 건설 현장도 찾는 등 각별한 관심을 보여왔다. 삼성은 지난해 11월 첫 설비를 반입해 일부 가동을 시작했고, 2030년까지 총 20조원을 지속적으로 쏟아붓는다는 계획이다.

이 회장은 오후엔 현 기술력의 핵심인 화성캠퍼스의 첨단 메모리 생산 라인(16라인)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삼성이 HBM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기반이 된, ‘10나노급 6세대 D램(D1c)’을 생산하는 핵심 라인이다. 삼성은 5세대인 HBM3E에서 SK하이닉스 등 경쟁사에 밀리자, 지난해 ‘구원투수’로 영입된 전영현 부회장 주도로 HBM의 기본 재료인 D램 재설계에 착수했다. 원점으로 돌아가 설계부터 바꾸고 속도전을 펼치는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그렇게 개발한 6세대 D램 D1c를 바탕으로 한 차세대 HBM4는 현재 엔비디아를 비롯한 주요 빅테크 테스트에서 경쟁사 대비 우월한 성능을 보여, 내년에 본격 양산과 납품을 앞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HBM, D1c와 차세대 낸드플래시 반도체인 V10 등 첨단 제품 사업화에 기여한 직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현장 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했다고 삼성은 밝혔다. 또 전영현 부회장과 송재혁 반도체 부문 CTO(최고기술책임자) 등 경영진과도 사업 전략을 논의했다. 이 회장은 “과감한 혁신과 투자로 본원적 기술 경쟁력을 회복하자”고 강조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2일 삼성전자 화성캠퍼스에서 임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삼성전자

◇“내년 삼성 D램 1위 탈환할 듯”

반도체 업계와 증권가에선 삼성전자가 HBM4를 앞세워 내년에 D램 반도체 시장 1위 타이틀을 다시 꿰찰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HBM 개발에 실기(失期)하면서, 33년간 지켜온 세계 D램 시장 1위 자리를 지난 1분기 SK하이닉스에 내준 바 있다.

삼성은 HBM 시장에서도 거센 추격을 이어가고 있다. 뒤늦게 기술력을 보강한 HBM3E는 엔비디아를 비롯한 전 고객 대상으로 판매를 확대해 올 3분기 판매량이 2분기 대비 1.8배 이상 늘었다. 차세대 HBM4는 기술 면에서 다시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 3분기 HBM 시장에서 그간 미국 마이크론에 내줬던 2위 자리를 9개월 만에 탈환하는 등 상승세다. 또 불황일 때도 생산 시설에 막대한 투자를 한 덕분에 경쟁사 대비 압도적인 생산 설비를 갖추고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KB증권 김동원 리서치본부장은 “글로벌 최대 D램 생산 능력을 보유한 삼성전자가 HBM과 일반 D램 가격 상승의 최대 수혜를 받으며, 내년에는 HBM 점유율을 2배 확대하고, 영업이익도 100조원을 달성할 수 있는 가시권에 들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