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과 경영권 분쟁 중인 영풍이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건설 관련 “최종 합작계약이 체결되지 않아도 합작법인(JV)이 고려아연 지분 10%를 그대로 보유하게 되는 비정상적 구조”라고 주장했다.
21일 영풍에 따르면 JV 투자자들이 체결한 ‘사업제휴 프레임워크 합의서(Business Alliance Framework Agreement)’는 당사자들의 역할과 책임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최종 계약에서 이를 정하도록 하고 있다.
영풍은 “합의서에서는 합작의 성패를 좌우하는 최종 계약이 2년 내 체결되지 않을 경우 합의서 자체가 해지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도, 기존에 발행된 고려아연 신주의 효력이나 회수·소멸에 대해서는 어떠한 규정도 마련돼 있지 않다”고 했다.
이어 “최종 계약이 무산되더라도 합작법인은 고려아연 지분을 계속 보유하게 되고, 고려아연은 지분을 되돌릴 법적 수단을 갖지 못한 채 주주들의 지분 희석화만이 초래되는 구조가 된다”고 덧붙였다.
앞서 고려아연은 미국 상무부·전쟁부(옛 국방부) 및 방산전략기업 등과 크루서블메탈즈(CrucibleMetals,LLC)라는 JV를 설립해 미 테네시주 클락스빌(Clarksville)에 비철금속 제련소를 건설하기로 했다고 지난 15일 밝혔다.
고려아연은 자금 조달 방법 중 하나로 미 전쟁부가 최대주주(40.1%)로 있는 JV에 고려아연 지분 약 10.59%를 제3자 배정 유상증자하기로 했다.
영풍은 이러한 지분 이전 순서가 정상적인 합작 절차와는 크게 다르다고 강조했다. 통상적인 합작 사업에서는 최종 계약을 통해 권리와 의무가 명확히 확정된 후 신주 발행이 이뤄진다. 하지만 이번에는 신주 발행이 최종 계약 체결 전에 먼저 진행돼 계약 성립 여부와 무관하게 JV가 지분을 확보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풍은 ‘계약 없는 신주 발행’이라는 구조적 결함을 그대로 드러내며, 사업의 실체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려아연만 일방적인 재무적·지배구조적 리스크를 부담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영풍은 “고려아연이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지분 10%를 JV에 선제적으로 배정한 것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면서 “기존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배제하고 외부 기관에 지분을 배정하려면 명확한 경영상 필요성과 실질적 대가가 요구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칫 회사가 실질적인 이익 없이 지분만을 상대방에 이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경영진의 판단에 대한 책임 문제로 확산될 우려도 있다”고 했다.
또 합의서에는 미국 측 투자자가 어떠한 지원을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제공해야 하는지에 관한 구체적 조항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사업 수행과 그에 따른 위험 부담은 고려아연이 거의 전적으로 떠안도록 규정돼 있어, 책임의 실질적 배분이 일방적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명확하게 드러난다고도 했다.
영풍은 “이러한 상황에서 이사회가 지분 배정과 합작 추진을 승인했다면, 이는 기업의 지배구조와 주주 보호 원칙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영풍·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 이사회에서 결의한 유상증자 안건에 대해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수석부장판사 김상훈)는 지난 19일 오전 영풍·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을 상대로 제기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심문기일을 열었고, 양측은 신주 발행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놓고 정면으로 맞섰다. 재판부의 결론은 빠르면 22일 혹은 23일에 나올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