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열풍을 타고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가스터빈과 수소연료전지를 만드는 한국 기업이 수혜를 볼 가능성이 커졌다. 전력 부족과 전력망 병목 우려에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에 근처에서 직접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천연가스발전과 수소연료전지에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20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 17일 미국에서 가스터빈 추가 수주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미국 빅테크 업체와 380MW급 가스터빈 3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 기업이 건설하는 데이터센터에 가스터빈과 발전기를 공급한다. 2027년에 1기, 2028년에 2기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난 10월에도 미국의 한 빅테크 업체로부터 380MW급 가스터빈 2기를 수주했다. 이전까지 두산에너빌리티는 국내 발전소에만 가스터빈을 공급해 왔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이 업체에 내년 말까지 가스터빈을 공급할 예정이다.

미국 버지니아주 애쉬번의 디지털 리얼티 데이터센터. 옥상에 설치된 냉각 환풍기와 지하 발전기가 보인다. / AFP 연합뉴스

가스터빈은 전력 생산용 발전 설비에 쓰이는 핵심 기기다. 천연가스나 수소 등을 연소시켜 고온·고압의 가스를 만들고 이를 이용해 발전기를 돌리는 장치다. 두산에너빌리티는 270MW~380MW급 대형 가스터빈을 만들어 국내 발전소에 공급해 왔다. 이제 미국 시장에도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미국 빅테크 기업이 기존 전력망에서 전력을 공급받지 않아도 되는 ‘자체 발전 시스템’, 이른바 분산 전원 마련에 나선 덕분이다. 상당수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인근에 자체적으로 천연가스 발전소를 만들어 전력을 수급하려 한다.

일례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AI 기업 xAI는 지난 1년 동안 테네시주 멤피스에 있는 데이터센터에서 수십 대의 가스터빈을 이용한 발전소를 지어 전력을 만들었다. xAI는 미시시피에 천연가스발전소도 건설할 계획이다.

오픈AI는 텍사스주에 있는 스타게이트 데이터센터에 361메가와트(MW) 용량의 천연가스발전소 10기를 설치, 전력을 공급받을 예정이다. 메타도 오하이오주에 있는 데이터센터에 200MW 규모의 자체 발전소를 갖추기로 했다.

전 세계에서 가스터빈을 만들 수 있는 기업은 미국 GE버노바, 독일 지멘스, 일본 미쓰비시파워, 이탈리아 안살로, 한국 두산에너빌리티까지 5곳뿐이다. AI 성장으로 자체 발전소 건설이 늘고, 이로 인해 가스터빈 수요가 많아질수록 두산에너빌리티는 더 많은 기회를 엿볼 수 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개발하고 제작한 380MW급 가스터빈. / 두산에너빌리티 제공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향후 10년간 미국에서 새로 생기는 데이터센터는 전력 대부분을 천연가스발전소로 충당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천연가스발전소의 핵심 부품인 가스터빈 강자인 GE버노바, 지멘스, 미쓰비시파워가 전체 물량을 소화하기 힘든 상황이라 후발 주자인 두산에너빌리티에 수주 물량이 넘어올 수 있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창원 공장의 가스터빈 생산 능력을 연간 8대에서 2028년까지 12대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두산퓨어셀, SK에코플랜트, HD한국조선해양과 같은 수소연료전지 관련 기업도 AI발(發) 전력난의 수혜를 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수소연료전지는 수소와 산소의 전기화학 반응을 통해 전기와 열을 생산하는 발전 시스템이다.

수소연료전지는 배터리와 달리 수소가 공급되는 한 재충전 없이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가동률은 95% 수준으로 24시간 내내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제작 및 설치 기간이 짧아 주문 후 1년 내에 전력 공급이 가능한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기존 전력망에서 전력을 공급받기 위해 송배전망을 설치하는데 통상 4년 이상이 걸린다는 것을 고려하면 전력을 보다 빨리 공급받을 수 있는 셈이다.

두산퓨어셀 관계자는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데 보통 1년 6개월 정도 소요되는데 그에 맞춰 수소연료전지 구축이 가능하다”며 “440KW급 수소연료전지 기본 모델이 40피트급 컨테이너 하나라 설치 면적도 작고, 확장도 용이하다”고 말했다.

두산퓨어셀은 수소연료전지를 상용화한 상태로 부산그린에너지, 대산수소연료전지 발전소를 2020년에 구축했다. 또한 영국 세레스파워(Ceres Power)와 협력해 올해 상반기에만 약 1550억원을 투자, 50MW 규모의 생산설비를 구축했다.

SK에코플랜트는 수소연료전지를 부평 데이터센터에 설치했다. 부평 데이터센터는 수소연료전지를 보조 전력 공급원으로 활용한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해 7월 1400억원을 출자해 수소연료전지 전문 자회사 HD하이드로젠을 출범시켰다. HD하이드로젠은 연료전지 시스템 분야 글로벌 기업인 컨비온(Convion)을 7200만유로에 인수하고 수소연료전지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