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빅3’ 완성차 업체 포드의 전기차 ‘변심’으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충격을 받고 있다. “전기화 혁명을 선도하겠다”던 포드가 지난 15일 전기차 사업 축소를 사실상 공식화하면서다. 포드는 간판 차종인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 생산을 중단하고, 수익성이 좋은 하이브리드차와 내연기관차에 집중하는 쪽으로 사업을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급선회로 한국 배터리 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17일 포드는 LG에너지솔루션과 작년 10월 맺은 계약을 파기했다.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에서 5년간 9조6030억원 규모 배터리를 생산해 포드의 유럽용 전기차에 공급한다는 계획이 백지화된 것이다. 포드는 앞서 지난 11일 2022년 SK온과 함께 세운 미 합작 법인 블루오벌SK도 해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초 양 사는 총 16조8000억원을 투자해 포드 전기차 전용 배터리를 만들 계획이었다.

배터리 업계는 졸지에 수조 원대 매출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배터리·소재 기업들은 최근 2년 이상 전기차 캐즘(chasm·수요 정체)을 버티기 위해 구조 조정에 나서거나 유상증자 등으로 현금을 확보하는 등 안간힘을 써 왔다. 특히 올 들어 AI(인공지능) 전환 속 수요가 늘어난 ESS(에너지 저장 장치) 수주로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조금씩 나오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포드발 대형 악재로 배터리 보릿고개가 더 길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9.6조 배터리 계약 날아가

포드는 지난 2021년 5월 “2025년까지 300억달러 이상을 전기차 전환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포드는 “지금은 헨리 포드가 모델 T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큰 성장 및 가치 창출 기회”라고 했다. 하지만 5년도 안 돼 180도 입장이 달라졌다. 그사이 정권이 교체되며, 올해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한 여파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0월부터 전기차 구매에 적용되던 7500달러(약 1100만원) 규모 세액공제(보조금)를 폐지했다. 바이든 행정부 때 강화했던 미국 자동차 연비·환경 규제도 완화했다.

정책 변화는 시장 수요를 뒤흔들었다. 올 1~11월 포드의 미국 내 판매량은 전년 대비 6% 늘어난 반면 전기차는 오히려 7% 감소했다.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는 20% 급증했다. 전기차 보조금이 없어지면서 전기차 수요가 하이브리드 등으로 옮겨간 것이다. 포드는 전기차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을 대폭 줄이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전기차 중 가장 잘 팔리는 모델이었던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고, 지난 9일에는 프랑스 르노와 유럽에 판매할 소형 전기차를 공동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투자 부담을 줄이려는 것이다.

◇캐즘 더 길어질 우려

포드의 유턴 파장이 더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GM(제너럴 모터스)도 내년부터 미국 디트로이트 전기차 공장에서 생산을 줄이고 직원 1750명을 해고하겠다고 지난 10월 말 밝혔다. 리릭·비스틱 등 캐딜락 전기 SUV 2종을 만드는 미 테네시주 조립 공장 가동도 12월 한 달 동안 중단하기로 했다.

지프·푸조 등을 보유한 스텔란티스도 전기 픽업트럭 모델 ‘램1500’ 개발 계획을 지난 9월 철회하고, 고연비 엔진 생산을 재개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알려진 것 외에도 전기차 생산이 취소되며 계약이 사라지는 일이 빈번하다”면서 “미국 전기차 보조금 폐지로 전기차 시장이 내년에 더 움츠러들 가능성이 커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