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자동차 맹주인 독일 자동차 3사(폴크스바겐그룹·메르세데스 벤츠·BMW)의 올 3분기(7~9월) 총 영업이익이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6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끊임없이 저가 공세를 펼치는 중국 제조사와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중국 내수 시장에서 영향력을 크게 잃은 데다, 전기차에 대규모 투자를 했지만 뚜렷한 경쟁력을 보이지 못하고 손실만 커지면서 타격을 입고 있다.
최근 유럽 자동차 시장은 커다란 변화를 맞고 있다. EU(유럽연합)이 지난 16일(현지 시각) 탄소중립의 상징과도 같았던 ‘2035년 내연차 판매 전면 금지’ 법안을 철회했다. 폴크스바겐그룹이 창사 88년 만에 처음으로 독일 안에 있는 공장을 폐쇄했다. 프랑스 르노는 처음으로 미국 포드와 손잡고 유럽에서 판매할 소형 전기차 개발에 나선다. 안방 공략을 위해 외부와 손잡는 것이다. 독일차 3사의 부진은 기반이 취약해진 유럽차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퍼펙트 스톰’ 겪는 독일 車 산업
이날 영국 컨설팅 업체 EY가 전 세계 19개 완성차 회사의 재무제표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 3분기 독일 자동차 3사의 영업이익 합계는 전년 동기 대비 76% 감소한 17억1100만유로(약 3조원)로 집계됐다. 1년 새 약 9조2400억원 줄면서, 분기 총 영업이익으로는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 3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폴크스바겐그룹과 메르세데스 벤츠의 부진이 큰 영향을 줬다. 두 회사는 올 3분기에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각각 146%, 70% 감소했다.
가장 큰 요인으로 매출의 30~40%를 차지해 온 중국에서의 부진이 꼽힌다. 중국 시장에서 내수 침체가 나타나며 고급차 소비 자체가 늘지 않고 있는 데다, BYD(비야디), 지리 등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급부상하면서 내수 실적이 직격탄을 맞았다. 올 1~3분기 독일 3사의 중국 내 판매량은 1년 새 309만대에서 286만대로 23만대(8%) 감소했다.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독일 업체가 차지하는 점유율도 2020년 40%에서 올해 3분기 29%까지 곤두박질쳤다. EY는 독일차 부진에 대해 “미국 관세 정책, 전기차 부문에서 투자 비용을 회수하지 못한 상황 등이 독일 자동차 업계에 ‘퍼펙트 스톰’(복합 위기)을 불러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EU ‘내연차 금지’ 철회, 난관 많아
내연차 판매 금지 방침이 철회되며 독일차가 한숨 돌릴 여지가 생긴 것은 사실이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디젤차 등 내연기관차 판매가 가능해진 것은 맞지만, 결국 전기차를 포함해 자율주행 등 IT 기반 기술이 반영된 미래차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분야를 일찌감치 전기차 전환을 시작한 중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중국차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유럽 시장에 잇따라 진출하고 있다. BYD는 헝가리, 튀르키예 등에 공장을 지으며 현지 생산도 준비 중이다. 독일차 3사를 비롯한 유럽차가 안방을 점차 더 내줄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뜻이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학과 교수는 “EU가 내연차 금지 조치를 철회하기는 했지만, 이 틈을 타서 오히려 중국 전기차가 유럽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입해 시장을 선점해버리면 독일 3사는 장기적으로 경쟁력 약화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