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완성차 업체 포드와 맺은 9조6000억원 규모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해지한다고 17일 공시했다. 미국에서 전기차 구매에 적용되던 세액공제 혜택 폐지 이후 포드가 전기차 사업 전략을 수정한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포드는 SK온과 합작 관계를 정리하기로 하는 등, 전기차 수요 정체 국면인 ‘배터리 캐즘’이 더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날 “2024년 10월 15일 공시한 당사와 포드 간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에 대한 해지”라며 “거래 상대방(포드)의 일부 전기차(EV) 모델 생산 중단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 상황이나 전략 변화에 따라 사업 계획이 조정되는 경우는 있지만, 10조원에 육박하는 장기 공급 계약이 해지되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앞서 지난해 10월 두 회사는 2032년까지 6년간 75GWh(기가와트시), 내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34GWh 규모의 배터리 장기 공급 계약을 맺었다.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에서 전부 생산돼, 유럽용 전기차에 탑재될 예정이었다. 이 가운데 2027~2032년 계약 건이 해지된 것으로, 해지 금액은 약 9조6030억원에 달한다.
포드는 최근 전기차 구매에 적용되던 세액공제 혜택이 폐지되자, 전기차에서 한발 물러서 비교적 수익성이 높은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 차량에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사업 전략을 수정했다. 이에 따라 판매 부진이 컸던 대형 전기 픽업 F-150 라이트닝 생산을 중단하고, 저가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포드는 2027년까지 세전 기준 195억달러(약 28조8000억원) 규모의 비용을 떠안을 것으로 추산된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포드의 전략 수정의 파장이 배터리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SK온은 지난 11일 포드와의 미국 배터리 생산 합작 법인 ‘블루오벌SK’ 생산 시설을 독립적으로 소유·운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SK온은 테네시 공장을, 포드는 켄터키 공장을 각자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