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미 테네시주에 추진하는 11조원 규모 신규 제련소 건설은 미국 정부 입장에서 ‘안보 잭팟’에 가깝다. 이 공장 하나로 미국에 필요한 핵심 전략 광물의 약 20%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공급망 허브’ 역할도 기대된다. 다만 일각에선 대규모 투자에 따른 재무 부담과 미국 정부의 경영 간섭 가능성 등 ‘숨은 리스크’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美 전략 광물 11종 공급
미국 정부는 3년마다 전략 광물 목록을 재평가하는데, 2022년 지정한 50종에 지난달 구리·납·붕소 등 10종을 추가했다. 2029년 제련소가 완공되면, 총 60종의 광물 가운데 11종을 생산하게 될 전망이다. 이는 미 국무부가 주도하는 광물 안보 협의체 ‘팍스 실리카(Pax Silica)’ 구상과 직결된다.
고려아연 입장에서는 미국 내 거대 수요처를 선점하는 효과가 있다. 고려아연은 최근 미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에 게르마늄을 공급하기로 했다. 게르마늄은 열영상 장비와 야간 투시경 등 방산 장비의 핵심 소재다.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갈륨과 고순도 황산 공급이 본격화되면 인텔과 마이크론 등 현지 반도체 기업도 고객군으로 확보할 수 있다.
미국에 생산 거점을 둔 한국 기업들과의 시너지도 예상된다. 한화는 10억달러(약 1조4700억원)를 투자해 2030년 양산을 목표로 포탄 공장을 건설 중인데, 포탄과 기폭 장치 등에 필요한 핵심 원료인 안티모니를 고려아연 제련소에서 조달할 수 있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의 소재 공급망도 단축된다. 테네시주에 연산 12만t 규모의 양극재 공장을 짓는 LG화학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고려아연 제련소로부터 니켈, 코발트 등 주요 원료를 공급받을 수 있다. 현대차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역시 전장(電裝)과 차체 제조에 필요한 광물을 보다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일각에선 대규모 빚보증 따른 부담 우려
일각에선 미국이 설계한 구조 위에서 실익은 미국이 챙기고, 리스크는 한국 기업이 짊어지는 건 아닌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11조원에 달하는 투자금 대부분을 합작법인(JV) 차입으로 조달하는 과정에서 연대보증을 서는 고려아연의 재무적 부담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지분을 투자한다고는 하지만 실제 건설 및 운영에 따른 재무적 리스크는 운영 주체인 고려아연이 떠안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아연 측은 “4년의 공사 기간을 포함해 긴 시간에 걸쳐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고 차입금도 대부분이 저리의 미 정부 정책 자금이라 재무적인 충격을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