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이 세계 3위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 SK실트론을 인수한다. 인수 대상 지분은 70.6%로 거래 규모는 3조원대로 예상된다. 거래가 성사되면, 두산그룹의 미래 먹거리인 반도체 등 첨단 소재 사업에 한층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SK그룹 지주사인 SK㈜는 17일 SK실트론 지분 매각을 위해 ㈜두산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통보했다고 밝혔다.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사업 구조 조정을 진행해 온 SK㈜는 지난 4월부터 SK실트론 보유 지분 70.6%를 매각하기 위해 여러 곳의 사모펀드(PEF)와 논의를 진행해왔다. 이후 8개월 만에 두산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낙점한 것이다.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를 생산하는 SK실트론은 현재 글로벌 시장 점유율 3위(12인치 웨이퍼 기준)를 차지하고 있다. SK㈜는 지난 2017년 LG그룹 계열 LG실트론 지분 51%와 재무적 투자자 지분 19.6% 등 총 70.6%를 약 7900억원에 인수했다. 나머지 지분 29.4%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사들였고, 이 지분은 이번 매각 논의에서 제외됐다.
SK실트론은 SK그룹에 인수된 이후 외형이 커졌다. 매출은 2017년 9331억원에서 지난해 2조1268억원으로, 7년 새 2배 이상 성장했다. 영업이익 역시 같은 기간 1327억원에서 3155억원으로 늘었다.
SK그룹이 SK실트론 매각에 나선 것은 재무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유동성 확보 차원이다. 재계 관계자는 “SK실트론의 기존 주고객은 SK하이닉스였지만, 외부에 매각되면 더 많은 고객사를 확보해 사업 확장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에서 시장의 주목을 받아왔다”고 했다. 현재 SK실트론 몸값이 5조원대로 거론되고 있는 만큼, 매각이 성사되면 SK㈜는 3조원 이상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SK그룹은 지난 3월 특수가스 회사인 SK스페셜티 지분 85%(약 2조6000억원)를 한앤컴퍼니에 매각한 바 있다. 이를 포함하면 약 6조원 규모의 유동성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두산그룹은 SK실트론을 실제 인수할 경우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사업 포트폴리오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두산은 현재 지주사인 ㈜두산 내 전자BG 사업부와 자회사 두산테스나를 두 축으로 반도체 사업을 하고 있다. 두산이 2022년 인수한 두산테스나는 국내 1위 반도체 후(後)공정 기업으로 비메모리 반도체 테스트 분야에 특화돼 있다. ㈜두산의 전자BG가 생산하는 반도체 기판용 동박적층판(CCL)은 PCB 업체 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미국 엔비디아에 공급되고 있다. 이번에 웨이퍼 제조사인 SK실트론까지 품게 되면, 두산은 반도체 산업의 전·후방인 웨이퍼(소재)와 후공정(테스트)을 책임지게 된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점차 영역이 넓어지는 만큼 사업의 시너지를 꾀할 수 있고, 가격 협상력에서도 우위를 점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양사는 현장 실사와 계약 조건 협의 절차 등을 거쳐 주식 매매 계약 체결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거래에 정통한 관계자는 “내년 초까지는 매매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SK㈜는 이번 거래 관련 공시에서 “세부 사항은 우선협상대상자와의 협의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