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15일 미 테네시주에 약 11조원을 투자해 전략 광물 11종 등 광물 13종과 반도체용 황산을 생산하는 대형 제련소를 짓기로 결정했다. 제련소는 고려아연이 100% 소유해 운영을 책임지되, 까다로운 미국 내 사업 장벽은 미 국방부가 최대주주로 참여하는 합작 법인이 해결하는 구조다. 합작 법인은 고려아연의 주주(10%)로도 참여한다. 이로써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미국 진출이라는 명분과 우호 지분 10%라는 실리를 동시에 챙기며, 경영권 분쟁 중인 영풍·MBK파트너스와 지분 격차를 1%포인트 안팎으로 좁히게 됐다.

그래픽=김성규

◇한·미 전략 광물 동맹 구조는

고려아연은 15일 이사회를 열고 제련소 건설을 위한 자회사 출자 및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안건을 의결했다. 2029년 가동 목표인 테네시 제련소는 고려아연의 100% 자회사로 설립된다. 고려아연의 제련 기술 유출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대신 사업 자금 조달과 현지 지원은 고려아연과 미 국방부 및 미 현지 방산 기업과 투자자들이 참여하는 합작법인(JV)이 맡는다. JV는 고려아연이 지분 10%를 갖고, 나머지 지분은 미 국방부와 현지 기업 및 투자자들이 갖는다. JV는 고려아연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신주 약 10%를 받고, 고려아연은 이 증자 대금으로 제련소를 인수, 운영하게 된다.

고려아연 공시에 따르면 JV의 최대 주주는 의결권 40.1%를 가진 미국 국방부다. 국방부가 주축이 된 이 JV는 고려아연의 제련소 운영을 위한 미국 내 인허가 등 규제 대응 지원, 안정적인 원료 공급원 및 판매처 확보, 프로젝트 전반의 관리 등 해결사 역할을 맡는다. 환경 규제가 엄격한 미국에서 제련소를 짓기 위해선 정부의 인허가가 필수적이다.

앞서 미 국방부는 미국 내 유일한 희토류 광산 운영 기업 MP머티리얼즈의 지분을 확보했는데, 이와 유사한 모델이다. 미국이 JV의 최대 주주가 되는 동시에, JV를 통해 고려아연의 주요 주주가 되면서 고려아연과 미국 간 협력을 ‘전략 광물 동맹’ 차원으로 묶겠다는 것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도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테네시에서 추진되는 고려아연의 프로젝트는 미국의 핵심 광물 판도를 바꾸는 획기적인 딜(transformational deal)”이라며 “이를 통해 미국은 항공우주·국방,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자동차, 산업 전반, 국가 안보에 필수적인 13종의 핵심·전략 광물을 대규모로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고려아연 측은 전했다.

한편 제련소가 세워질 테네시주는 고려아연의 제련 사업 수익성을 좌우하는 전기료에 강점이 있는 지역이다. 미국 최대 공공 전력 공급 업체인 테네시밸리전력청(TVA)의 안정적인 전력망을 기반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경영권 분쟁도 점입가경

고려아연 경영권을 놓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분쟁 중인 MBK 등은 이날 미 제련소 건립 추진에 대해 “내년 3월 주주총회를 앞둔 최 회장 측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시도”라며 반발했다. 고려아연 유상증자에 JV가 참여해 지분 10%를 확보하게 되면, 최윤범 회장 측의 우호 지분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고려아연의 MBK 측 지분율은 44.24%, 우호 지분을 포함한 최 회장 측 지분은 약 32%다. MBK 측은 지분율을 바탕으로 최근 고려아연 이사회에 이사 수를 늘려왔다. 하지만 고려아연과 미국 측이 만든 JV가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고려아연 발행 주식 총수의 약 10%를 확보하면, 전체 주식 수가 늘어나면서 MBK 측은 40.2%, 최 회장 측은 29% 안팎으로 지분이 줄어든다. 대신 JV가 확보한 10%는 최 회장 측 우군이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MBK 측과 최 회장 측 지분율이 40.22%대 39.12% 안팎으로 좁혀진다. MBK 측이 일방적 우위를 점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MBK 측은 이날 “한국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짓는 대가로 주식을 헌납한 전례는 없다”며 “‘백기사’를 구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아연 주권’을 포기하는 배신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반발했다. MBK 측이 이사회 결의 효력 정지 가처분 등 법적 대응에 나서며 분쟁이 격화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MBK 측은 이날 이사회 종료 후 “고려아연 측의 ‘신주 발행(유상증자) 금지 가처분’ 신청을 즉시 법원에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