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 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하여 발언하고 있다. / 뉴스1

정부가 탈탄소를 위해 공기열을 난방·온수에 활용하는 히트펌프 보급에 속도를 내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16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리는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 겸 성장전략태스크포스(TF)를 통해 2035년까지 히트펌프 350만대를 보급해 온실가스 518만t을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내년 예산으로만 583억원을 투입한다.

히트펌프는 외부 공기·땅·물 등에 있는 열을 전기로 끌어와 실내 난방이나 급탕에 활용하는 장치다. 화석연료를 직접 태우지 않아 재생에너지로 분류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열(熱)에너지 부문 탈탄소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꼽힌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이 지난 10월 부처 출범 직후부터 ‘열산업혁신과’를 신설하고 속도전에 나서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정부는 태양광이 설치된 단독주택, 사회복지시설, 도시가스 인프라가 없는 신도시 신축 아파트 등을 중심으로 히트펌프를 집중 보급하겠다는 구상이다. 설치 보조금, 요금 혜택, 공공부문 의무 설치 등을 통해 초기 시장을 키우겠다는 복안도 내놨다. 하지만 현장에선 “보조금 없이는 성립하기 어려운 설비를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초기 비용 1000만원 드는 히트펌프, 보조금으로 밀겠다

정부는 히트펌프 확산을 위해선 초기 보조금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기후부에 따르면 히트펌프는 본체 구입에만 550만~700만원이 들고, 급탕조(온수 저장 탱크)를 별도로 설치해야 해 200만~300만원이 추가로 소요된다. 여기에 배관·전기 공사 등 설치비로 약 100만원이 더 들어간다. 한 가구당 총비용이 1000만원을 훌쩍 넘는 셈이다. 설치비를 포함해 100만원 안팎이면 가능한 콘덴싱보일러와 비교하면 초기 비용이 최대 10배에 달한다.

‘값비싼’ 설비라는 점만큼이나 에너지 효율도 숙제로 꼽힌다. 공기열 히트펌프는 외부 기온이 낮아질수록 성능이 떨어지는데, 겨울철 영하권 기온이 잦은 한국에선 바깥 공기를 데우기 위해 더 많은 전기를 써야 한다. 이때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써야 ‘친환경 난방’이 되는 것이지만, 난방 수요가 집중되는 밤·새벽 시간대에는 LNG 발전이나 ESS(에너지 저장 장치) 없이는 가동이 어렵다. 또 주택용 누진제 적용으로 전기요금이 급격히 늘어 ‘난방비 폭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이런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이르면 연말 히트펌프 전용 전기요금제를 도입하겠다는 구상이다. 유럽연합(EU), 일본처럼 공기열을 재생에너지로 포함할 수 있도록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개정과 관련 규정 정비에도 나선다는 방침이다.

◇“속도전보다 여론 수렴이 우선”

전문가들은 히트펌프 보급 확대가 한국의 ‘온돌 중심 난방 문화’와 충돌할 가능성을 가장 우려한다. 바닥 전체를 데우는 난방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해낼지 관건이라는 것이다. 불만족스러울 경우 전기장판이나 전기히터 등 보조 난방기기를 함께 쓰게 돼, 전력 소비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설치 공간 문제도 걸림돌로 지적된다. 히트펌프는 냉장고 크기 만한 급탕조를 필수로 설치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아파트에선 다용도실이나 베란다 공간을 상당 부분 차지할 수밖에 없다.

보조금과 요금제 없이는 소비자 선택을 받기 어렵다는 점에서, 히트펌프 시장이 ‘자생 단계’까지 갈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신도시 아파트 등에 본격 적용될 경우 입주민 반발로 정책 추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정부가 원전 정책도 여론 수렴을 강조하고 있지만, 히트펌프는 속도 면에서 그보다 더 공론화가 시급해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