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15일 미국 전쟁부(국방부), 상무부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미국 테네시주에 약 11조원을 투자해 ‘핵심 광물’ 제련소 건설에 나선다고 밝혔다. 사업명은 ‘미국 제련소(U.S. Smelter)’다. 사실상 멈춰 선 미국 제련 사업을 고려아연 중심으로 재건한다는 계획이다.
한·미 조선 협력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가 중국의 해양 조선·해운 장악에 맞선 사업이라면, ‘미국 제련소’ 사업은 중국의 희토류 등 핵심 광물 패권에 대응하는 한·미 전략 광물 동맹이라는 평가다. 고려아연이 미국 현지에 전략 광물 제련소를 건설하고, 미국 국방부와 현지 방산 기업들은 고려아연의 주주로 참여하는 게 이번 사업의 핵심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도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테네시에서 추진되는 고려아연의 프로젝트는 미국의 핵심 광물 판도를 바꾸는 획기적인 딜(transformational deal)”이라며 “이를 통해 미국은 항공우주·국방,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자동차, 산업 전반, 국가 안보에 필수적인 13종의 핵심·전략 광물을 대규모로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고려아연 측은 15일 전했다.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건설은 2026년 부지 조성을 시작으로 건설에 착수해 2029년부터 단계적 가동과 상업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해당 시설은 연간 약 110만t의 원료를 처리해 54만t 규모의 최종 제품들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생산 품목은 아연·연·동 등 산업용 기초 금속을 비롯해 금·은 등 귀금속, 안티모니, 인듐, 비스무트, 텔루륨, 카드뮴, 팔라듐, 갈륨, 게르마늄 등 핵심 전략 광물이 포함된다. 이와 함께 반도체 황산도 생산된다.
고려아연은 단일 제련소 기준 세계 최대 생산 능력을 갖춘 울산 온산제련소 모델을 기반으로 제련 기술과 최적의 공정, 최신화된 제어 시스템을 적용해 약 65만㎡(약 20만평) 규모의 통합 제련소를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조성할 예정이다. 제련소 건립 예정지인 테네시주의 니어스타 제련소 클락스빌 부지는 지반 및 배수, 지하수 등 제련소 운영을 위한 제반 조건이 우수하고, 물류 접근성 역시 양호하다는 평가다. 또한 미국 내 유일한 아연 제련소가 50년 가까이 운영돼 아연 공정을 이해하는 전문 인력 수백 명의 고용 승계가 가능하다. 이 같은 인프라 활용을 위해 고려아연은 니어스타 클락스빌 제련소 인수에 대한 합의도 도출했다. 제련소 원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전기 요금도 미국 내 다른 지역 대비 상대적으로 저렴해 전력비 절감 효과가 큰 만큼 가공비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차원의 각종 지원 방안도 적극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고려아연은 “고려아연의 이번 미국 내 제련소 건설은 사업 안정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북미 전략 거점’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전기차, 배터리, 데이터센터 및 인공지능(AI), 반도체, 방위 산업 등이 집약돼 있다.
미국 제련소 건설에는 먼저 미국 전쟁부(국방부)와 투자자들이 함께 마련한 21억5000만달러(약 3조2000억원)가 투입된다. 고려아연과 미 측이 공동 투자해 설립하는 합작 법인은 향후 고려아연 지분 10%를 보유할 계획이다.
고려아연은 해당 자금과 기타 자금을 바탕으로 사업 수행을 위한 현지 합작법인(JV)을 설립해 제련소 건설 및 관리 감독을 수행하게 된다. 미 상무부는 반도체법(Chips Act)에 따라 미국 장비 조달 및 그 밖의 목적을 위해 자금 2억1000만달러(약 3100억원)를 지원할 예정이다.
미 정부와의 협력도 이어진다. 스티브 파인버그 미 전쟁부 부장관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핵심 광물을 미국의 국방 및 경제 안보에 필수적인 전략 자산으로 보고, 행정부 차원의 최우선 과제로 삼도록 지시한 바 있다”고 고려아연은 전했다.
다만, 고려아연 현 경영진과 경영권 분쟁 중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영풍 측의 반대는 이번 사업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MBK 측은 이날 고려아연 이사회가 의결한 ‘해외 제련소 건설’에 대해 “이사회가 의결한 해외 제련소 건설은 고려아연 주주의 이익을 해치고, 회사의 장기적 가치를 훼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려아연이 추진하는 2조8000억원 규모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등의 안건에 대해 “이는 주주 가치 훼손 및 재무 안정성 악화를 초래할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라며 “고려아연 이사회가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충분한 검토와 사회적 설명 절차 없이 대규모 해외 투자와 지배 구조 변동 안건을 졸속 처리했고, 고려아연의 장기적 지속 가능성과 주주 이익을 지키기 위해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즉시 법원에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 제련소 사업 단계 중 하나인 유상증자 절차를 우선 막고, 사안을 다시 논의한다는 것이다. 고려아연 유상증자에 JV가 참여해 지분 10%를 확보하게 되면, 최윤범 회장 측의 우호 지분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MBK 측이 가처분 등 법적 대응을 예고하면서 향후 분쟁이 격화될 가능성도 점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