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청 임금 격차 문제는 우리 제조업계의 오랜 숙제다. 조선업뿐 아니라 자동차·반도체 등 주요 제조업에서 실제 생산은 수많은 협력사 인력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대기업들은 협력사 처우 개선을 위해 지원하면서도, 그 방식에는 신중을 기해왔다.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직접 결정하는 순간, ‘실질적 사용자’로 간주돼 불법 파견 소송 등에 휘말릴 수 있다는 ‘법적 딜레마’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기업들은 ‘상생 펀드’ ‘기금’ 등을 통해 협력사에 자금은 지원하되, 고용·지휘는 철저히 분리하는 ‘한국형 상생 모델’을 통해 이중 구조 해소에 공을 들여왔다.
대기업들이 선호하는 방식은 기금, 펀드 등을 통한 금전 지원이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2010년부터 1조4000억원 규모의 상생 펀드를 조성해 설비 투자, 기술 개발 등 자금에 대해 최대 90억원까지 저금리 대출 등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엔 총 1조원 규모의 ‘협력회사 ESG 펀드’를 새로 만들어 1차 협력회사들이 ESG 경영 전환에 어려움이 없도록 무이자 대출을 지원한다.
LG 계열사들도 협력사가 무이자 또는 저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도록 1조20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LG전자는 시중 은행과 예탁·출연금으로 총 3000억원 규모 상생협력펀드를 운영하며, 신규설비 및 자동화 설비에 투자하는 협력사에는 매년 400억원을 무이자로 제공한다.
현대차·기아는 그룹 차원에서 총 2조3708억원 규모의 상생협력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2·3차 중소 협력사를 위해 수천억 규모의 기금·펀드도 별도 운영한다. SKT 역시 ‘동반성장펀드’를 통해 대출 금리를 최대 2.3%포인트 인하하고, 우수 협력사에는 무이자 대출을 제공한다.
금전적 지원을 넘어 복지 혜택을 협력사 직원과 나누려는 시도도 있다. 포스코는 공동근로복지기금을 통해 자녀 장학금과 복리후생을 지원한다. 협력사 직원들과 함께 자발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휴양 시설, ‘상생형 공동 직장 어린이집’도 운영한다.
노사 합의를 기반으로 성과, 임금을 공유하거나, 협력사 성과를 인정해 인센티브를 주기도 한다. SK하이닉스는 2015년부터 ‘이익공유제’를 도입해, 정규직 노조가 임금 인상분의 10%를 기부하면 회사가 같은 10%를 추가로 내어 임금 인상분의 총 20%를 협력사 직원 처우 개선에 쓰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0년부터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사업장에 상주하는 협력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현금 인센티브를 지급해, 올해 상반기까지 총 8416억원을 지급했다. 현금을 근로자 개인에게 지급하는 게 아니라, ‘안전 사고 예방’이나 ‘생산성 목표 달성’이라는 조건을 충족한 협력사에 지급하고 이를 협력사 대표가 배분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