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이 사내 협력사(하청) 직원 약 1만5000명에게 정규직과 동일한 성과급 비율을 적용하기로 하면서 조선업계와 재계가 술렁이고 있다. “노노(勞勞) 격차로 인한 극한 대립을 끊어내려는 상생 모델”이라는 긍정적 평가가 나오는 동시에 “대의는 좋지만 원·하청 간 기존 교섭 구조 전체를 흔드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교차하는 것이다.
한화오션의 상생안 내용을 이재명 대통령이 먼저 공개한 점도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고용노동부 업무 보고에서 “바람직한 기업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다”며 먼저 상생안 내용을 밝혔다. 특정 기업 차원의 결단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 먼저 공개되면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걱정이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이 대통령과 한화의 발표 이후 ‘다른 조선사도 같은 상생안을 도입하라’는 압박이 불거지고 있다.
◇기존에는 원청이 총액만… 협력사가 배분
조선업은 대규모 노동력이 필요하지만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특성상 정규직을 대폭 늘릴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국내 조선 3사(HD현대중공업·한화오션·삼성중공업) 조선소의 정규직 비율이 30~40%에 그치는 이유다. 대신 가공·용접·조립·탑재 등 대부분 작업에서 상대적으로 고용이 유연한 사내 협력사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이로 인한 조선사 직영 직원과 하청업체 직원 간 임금 격차 해소는 조선업 현장의 해묵은 과제였다. 한화오션도 대우조선해양 시절부터 해마다 몸살을 앓아왔다. 극심한 임금 격차에 따른 박탈감은 하청 노조의 투쟁 동력이 됐고, 이는 고스란히 납기 지연과 생산 차질로 이어졌다.
한화오션의 협력사 성과급 구조는 오랫동안 원청(한화오션)이 연간 영업이익 등 경영 지표를 기준으로 성과급 총액을 협력사에 지급하면, 130여 협력사가 각각 직원들의 근속 연수를 고려해 배분하는 방식이었다. 작년 한화오션 정규직은 기본급의 150%를 성과급으로 받았지만 협력사 직원은 75% 수준에 그쳤다. 이 같은 비율 격차를 없애고 동일하게 지급한다는 게 이번 상생안의 핵심이다.
한화오션은 특히 협력사 직원들의 성과급 비율을 자신들이 직접 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대기업(원청)은 하청 근로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상생협력기금을 출연하거나 복지를 지원하는 간접적인 방식을 택해왔다. 임금이나 성과급 같은 직접적인 근로 조건에 개입할 경우 하청 업체의 경영 독립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고,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실질적 사용자임을 인정하게 되는 리스크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한화오션 역시 그간 협력사와 성과급 갈등 국면에서 ‘성과급 지급 규모는 협력사의 고유 경영권’이라고 주장해왔다.
한화 측은 “해마다 되풀이되는 하청지회의 파업과 농성, 이로 인한 공정 지연 손실을 감안할 때 과감한 처우 개선으로 현장 불만을 잠재우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낫다는 차원에서 내린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동시에 내국인 인력 유입을 늘리고 숙련공을 붙잡아두려면 하청 처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 외엔 해법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동일 노동·동일 임금’ ‘사용자성’ 화두
조선업 현장의 이중 구조를 개선하고 인력난 해소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선 한화오션의 결단은 긍정적이다. 다만 한화가 하청 지회를 상대로 제기한 470억원 불법 파업 손배소를 여당 중재로 취하하는 등 현 정부 노동 이슈에서 일종의 모범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결단이 산업계에 하나의 ‘기준’으로 강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12일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진보당)은 기자회견을 열고 “HD현대중공업도 한화오션처럼 하청 노동자에게 정규직과 동일한 성과급을 지급하라”고 공개 요구하고 나섰다. 업계에 따르면 HD현대는 이미 한화오션보다 절대적인 성과급 지급 규모(액수)가 훨씬 크다. 그런데도 ‘비율 동일 적용’이라는 프레임에 따른 압박이 불거진 것이다. 재계에서는 “기업마다 지불 여력과 임금 체계가 다른데, 한화의 사례가 ‘모범 답안’처럼 굳어지면 다른 조선사뿐 아니라 자동차, 철강 등 하청 의존도가 높은 제조 기업들이 노조와 정치권의 타깃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내년 3월 시행을 앞둔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개정안)과 맞물려 이번 조치가 가져올 파장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번에 한화오션이 협력사의 성과급 규모를 사실상 직접 보장하는 방식을 약속한 만큼, 하청 노조가 원청과 직접 교섭을 요구할 명분을 제시한 사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엔 성과급 비율을 같게 하는 수준이지만, 이를 계기로 기본급과 각종 수당까지 비슷한 수준을 받게 해달라는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화의 시도가 성공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비용 부담만 늘고 노조의 요구 수위만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국내 기업들에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