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이 함께 150조원을 조성,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첨단 분야에 투자해 성과를 나누는 ‘국민성장펀드’가 10일 출범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던 ‘K엔비디아 모델’을 구체화한 것으로, 국민·기업·정부·연기금 등이 참여한 대규모 자금을 집중 투자해 엔비디아처럼 크게 성공하는 기업을 만들고 그 과실 역시 공유하겠다는 구상이다.
내수·수출이 모두 흔들리는 상황에서 투자가 위축된 산업계는 이 펀드가 ‘돈맥경화’를 뚫을 구원투수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펀드 운용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는 “현재 기업과 지방 정부 등에서 100건이 넘는 투자 수요가 사전 접수된 상태”라고 했다. 투자 요청액만 153조원으로 이미 펀드 조성 규모를 넘어섰다.
◇“150조 잡아라” 들썩이는 기업들
금융위원회는 11일 펀드 세부 운용 계획을 밝혔다. 5년간 운영되는 이 펀드는 정부 보증 채권 75조원과 민간 자금 75조원으로 구성된다. 투자 분야는 AI(30조원), 반도체(20.9조원), 모빌리티(15.4조원), 바이오·백신(11.6조원), 이차전지(7.9조원) 등 첨단 전략 산업이 주축이다.
기업의 투자 요청은 산업·금융계 전문가로 꾸려진 ‘투자심의위원회’가 1차 심사를 하고, 각계에서 추천한 전문가 9인으로 구성된 ‘기금운용심의회’가 최종 결정을 내린다. 자금은 직접 투자와 간접 투자, 인프라 투·융자, 초저금리 대출 등의 방식으로 내년 초부터 집행된다. 펀드 운영을 자문할 전략위원회 공동위원장에는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선임됐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업황 부진으로 투자금 마련이 쉽지 않았던 이차전지, 바이오 계열사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며 “특히 신용 등급이 낮아 회사채 발행이 힘든 곳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펀드가 제공하는 초저금리 대출은 금리가 2~3%대 수준이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도 “내년 상반기 펀드에 지원하기 위해, 구체적인 프로젝트 계획과 자금 동원 방안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증권가에선 ‘펀드 수혜주 찾기’ 바람도 불고 있다. 현대차증권 김재승 연구원은 “과거 정책 펀드를 보면 단기 성과가 좋았지만 이후 수익률이 둔화하면서 대부분 청산됐다”며 “국민성장펀드도 초기엔 정책 동력으로 인기를 끌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성장과 실적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펀드 수혜? 실적 뒷받침돼야”
중견·중소기업들은 “투자가 대기업에만 편중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중견기업연합회는 “대미 관세 협상 타결 이후, 기업들이 다시 한번 뛸 수 있도록 성장성 있는 중견 기업에 대한 충분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노란우산공제를 통해 국민성장펀드에 1000억원 이상을 투자하기로 했다”며 “첨단 분야의 중소기업이 고루 혜택을 받을 수 있게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규모 자금이 집행되는 만큼 운용 과정에서 공정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경제개혁연대 등 일각에선 SK하이닉스 등 특정 기업에 대한 쏠림 우려와 투자의 적절성, 일부 펀드 인사들의 적격성을 문제 삼고 있다. ‘국민성장펀드의 자금 40% 이상이 지역에 분배되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는 운용 계획을 두고도, 선거를 앞두고 지방 표심(票心)을 염두에 둔 조항이라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