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 여행갔는데 옆자리가 다 비어서 누워서 갔어요.”
“태교여행으로 괌 예매했는데, 괜히 프레스티지석(비즈니스석)으로 했네요. 수수료 내고 취소해야 할까요?”
최근 여행 커뮤니티에는 ‘눕코노미(옆 좌석이 모두 비어 누워 갈 수 있는 이코노미 좌석)’로 괌을 다녀왔다는 후기가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보통 괌 노선에 투입되는 중형 항공기 왕복에 드는 비용은 항공유, 공항 이용료, 인건비 등을 합쳐 수천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승객보다 승무원이 더 많은 ‘텅 빈 비행기’가 운항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7일 괌에서 출발해 부산에 도착한 대한항공 여객기에는 승객 3명만 탑승해 화제가 됐다. 여객기 전체 좌석은 180석 규모였다. 일반적으로 180석 규모 항공기에는 기장과 부기장, 객실 승무원 등 최소 6명의 직원이 탑승한다. 승객보다 승무원이 더 많았던 셈이다. 최근 날씨가 추워지면서 따뜻한 휴양지를 찾는 수요가 늘어 괌~부산 노선 승객이 50여명 안팎으로 증가하긴 했지만, 여전히 180석 규모 여객기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런 기현상이 발생하는 배경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좌석 공급 유지 의무’ 규제가 있다. 공정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승인하면서 “합병 당사자들은 40여 노선에 대해 2019년 공급 좌석의 9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합병 후 독과점으로 노선이 축소되고 운임이 오르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항공 수요는 시장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만큼, 이 규제가 오히려 저비용항공사(LCC)와 대형항공사 등 모두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토막 난 괌 노선
11일 국토교통부 항공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11월 괌 노선 여객수는 73만3349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 같은 기간(138만9438명)의 절반 수준이다. 작년 같은 기간(75만2647명)보다도 2.6% 줄었다.
괌 여행 인기가 급락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올해 달러당 환율이 1400원을 넘나들면서 괌 여행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고, 2023년 괌을 강타한 태풍 이후 인프라 복구가 더딘 것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비슷한 비행시간으로 갈 수 있는 베트남 나트랑·푸꾸옥, 필리핀 보홀 등 가성비 좋은 대체 휴양지가 각광받으면서 괌은 ‘구시대 여행지’로 밀려났다.
이런 상황이지만, 대한항공·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 등 한진그룹 계열 항공사들은 공정위 규제 때문에 괌 노선의 운항을 줄일 수 없다. 슬롯 이전, 운수권 양도 등 합병 승인 후 10년 이내 이행을 목표로 하는 구조적 조치가 끝날 때까지 ‘좌석 공급 90% 유지 의무’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괌이 비인기 노선이라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는 것이다.
◇”시정명령 변경신청하라”는 공정위
항공업계는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9년은 코로나 이전 괌 여행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였고, 현재와는 시장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향후 괌 노선 등에 대한 시정명령 변경 신청이 접수될 경우 이를 면밀히 살펴볼 계획”이라는 입장이다. 항공사가 먼저 변경 신청을 하면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규제 대상 항공사가 이를 신청하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시정명령 변경 신청 자체가 공정위와의 마찰을 의미할 수 있고, 승인 여부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와중에 과잉 공급의 부담은 특히 LCC와 지방공항에 집중되고 있다.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지난 10월부터 인천~괌 노선 운항을 전면 중단했다. LCC 관계자는 “대한항공, 진에어 등이 하반기 들어 괌 노선 증편에 나서는데다, 안 그래도 괌 인기가 식어 수요가 줄어들면서 LCC가 버틸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했다. LCC들이 괌 노선에서 발을 빼면서 현재 괌 노선을 운항하는 곳은 대한항공과 계열사인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