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첫 에너지 종합 계획인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수립을 위한 작업이 9일 시작됐다. 핵심은 ‘원전과 석탄 발전은 지우고, 재생에너지에 자원을 쏟아붓는 속도전’이 될 전망이다. 정부가 2035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61%나 줄이겠다고 국제사회에 공언한 만큼, 실현 가능성을 우려할 만큼 급진적인 목표가 담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9일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수립을 위한 첫 총괄위원회를 열었다. 에너지업계에선 정부의 종합 에너지 계획인 전기본에, 재생에너지를 대폭 늘리는 정책이 담길 것으로 예상한다. 전문가들은 무리한 재생에너지 확대가 산업계에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사진은 지난 2월 준공된 제주 한림해상풍력 발전단지. /한국전력공사

◇태양광 패널 매일 7만장씩 5년 깔아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12차 전기본 수립 방향 설정을 위한 첫 총괄위원회를 열고 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전기본은 정부가 2년 주기로 내놓는 종합 에너지 계획이다. 민관 전문가들이 향후 15년의 전력 수요를 전망하고, 필요한 발전원 구성과 설비 규모를 설계한다. 12차 전기본의 계획 기간은 2026년부터 2040년까지다.

12차 전기본 총괄위원장은 장길수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가 맡았다. 총괄위원회 산하에 수요 계획, 설비 계획, 계통 혁신, 시장 혁신 등 5개 소위원회가 꾸려진다. 정부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12차 전기본을 최종 확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12차 전기본은 윤석열 정부 때 확정된 11차 계획을 전면 수정하는 성격이 짙을 것이라는 게 에너지 업계와 학계의 전망이다. 올해 2월 확정된 11차 전기본에는 신규 원전 2기와 소형 모듈 원자로(SMR) 1기 신설 계획이 담겼다. 이후 4개월 만에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전기본의 바탕이 되는 2035 NDC를 2018년 대비 53~61% 감축으로 확정했다. 기후부는 12차 전기본의 방향성에 대해 “재생에너지 확대, 석탄발전 폐지 등 새 정부 국정 과제를 구체화하고 탄소 중립에 도달하기 위한 2040년까지의 경로를 제시하겠다”고 했다.

현 정부 로드맵은 2030년 재생에너지 용량 100GW 돌파를 목표로 설정했다. 남은 5년 동안 매일 태양광 패널(0.5kW 기준) 7만장을 전국 산과 들에 깔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풍력 발전으로 채운다고 가정하면, 매일 4MW(메가와트)급 터빈 9기씩 5년 내내 세워야 달성 가능한 수치다.

더 큰 문제는 송전망 부족이다. 전력거래소가 국민의힘 조지연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20일부터 11월 16일까지 58일간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원의 출력 제어 횟수는 총 25회였다.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재생에너지 공급 과잉을 막기 위한 발전소 가동 강제 중단이 벌어졌다는 의미다. 2023년 같은 기간엔 0회였고 작년에는 총 6회였는데, 1년 만에 4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송전망 확충 없는 재생에너지 확대가 전력 계통의 불안정성만 키우고 있다는 방증이다.

11차 전기본은 61개 석탄 발전소를 수명이 끝나는 순서대로 2038년까지 총 40기를 폐지할 방침이었다. 현 정부는 오는 2040년까지 석탄발전을 완전 폐지하겠다고 못 박았다. 12차 전기본에는 훨씬 급진적인 탈석탄 시간표가 제시될 전망이다.

◇신규 원전 2기는 공론화로 시간 끌기 예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산업계 충격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탈탄소 로드맵이 국가 경쟁력 후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구나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이미 확정된 신규 원전 2기에 대해 “국민 여론조사와 토론회를 거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공론화라는 명분으로 임기 내내 시간을 끌어 백지화하려는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는 SMR을 대안으로 제시할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상용화가 먼 SMR로 급증하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총괄위 구성도 도마에 올랐다. 실무를 논의할 위원진에 환경·시민단체 인사가 다수 포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의 합리적 목소리가 탈탄소 주장에 묻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