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4학년생과 졸업생 10명 중 6명이 ‘사실상 구직을 포기한 상태’라는 암울한 조사 결과가 나왔다. 고환율과 대미(對美) 투자 압박, 규제 리스크 등 복합 위기로 기업들이 투자나 신규 채용을 주저하고 있고, 그 결과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느낀 청년들이 아예 구직을 포기하는 일이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4조원가량의 세금을 풀어 올해 대학생들에게 역대 최대 수준의 장학금을 줬다. 가구 소득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장학금인데, 지급 기준을 완화해 수혜자가 198만명으로 1년 새 25.3%나 늘어난 여파다. 정부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마련하는 데 투자하는 대신, 청년들에게 일회성 장학금을 쥐어줘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포퓰리즘성 지원’이란 비판이 나온다.
◇얼어붙은 투자·채용
9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발표한 ‘2025 대학생 취업 인식 조사’에 따르면, 취업을 앞둔 대학 4학년생과 졸업생의 60.5%는 구직 기대가 낮은 ‘소극적 구직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극적 구직이란 실질적인 취업 준비나 계획을 하지 않거나, 아예 구직 활동을 중단한 상태를 의미한다. 채용 공고를 낸 기업에 경험 삼아 지원서를 한 번 내보는 수준의 의례적 구직(32.2%), 거의 안 함(21.5%), 쉬고 있음(6.8%)을 모두 합한 것이다. 취업을 위해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한다고 답한 비율은 28.4%에 그쳤다.
구직에 소극적인 이유를 묻자 절반 이상(51.8%)은 ‘일자리가 부족해서’를 들었다. 구직 활동을 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할 것 같아서(22%), 전공 또는 관심 분야의 일자리 부족(16.2%), 적합한 임금 수준 등 근로조건을 갖춘 일자리 부족(13.6%) 등이다.
재계에선 대내외 변수로 불확실성이 커진 기업들이 당장 내년도 투자 계획도 수립하기 어려운 상황이 채용 시장에 반영되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최근 한경협이 국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곳 중 6곳(59.1%)이 내년도 투자 계획이 없거나 미정이라고 답했다. 재계 관계자는 “채용은 투자의 후행 지표”라며 “내년 투자 계획조차 세우지 못한 상황에서 채용을 늘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얘기”라고 했다.
◇역대 최대 장학금, ‘청년 달래기’
이런 가운데 정부는 4조원에 육박하는 역대 최대 장학금을 투입해 ‘청년 표심(票心)’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9일 본지가 한국장학재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올해 국가장학금 1유형(가구 소득 연계)에 투입한 예산은 3조9926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12% 증가한 수치다. 수혜자도 198만명(1·2학기 합산)으로 작년보다 25.3% 늘었다.
학령 인구는 매년 줄어드는데 장학금 규모가 크게 늘어난 것은, 정부가 장학금 지급 대상과 금액을 모두 늘렸기 때문이다. 국가장학금은 학생이 속한 가구의 월소득을 11구간으로 분류해 차등 지급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국가장학금 지급 대상은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 구간부터 8구간까지 소득 하위 9구간의 학생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4월 총선 직전 “2025년부터 장학금 지급 대상을 확대한다”고 밝혔고, 그 결과 올해 4인 가구 기준 월소득 인정액이 1220만~1829만원인 9구간 가구 학생도 장학금을 받게 됐다. 17년째 이어지는 정부의 등록금 동결 정책을 견디지 못한 대학들이 올해 등록금을 인상하자, 정부가 올 2학기부터 국가장학금 지급 단가를 올린 것도 영향을 줬다. 이재명 정부와 국회 역시 내년 국가장학금 1유형 예산을 올해보다 824억원 증액하기로 했다.
교육계 관계자는 “정부가 청년 표심을 노리고 무리하게 제도를 확대해 국가장학금이 교육 예산 ‘블랙홀’이 되고 있다”며 “일회성 지원 대신 근본적인 대학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마련에 힘써야 할 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