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2030년까지 해상풍력 14.3GW(기가와트)를 깔겠다”던 정부가 목표치를 10.5GW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배후항만·설치선박·금융지원 등 해상풍력 보급의 전제 조건은 내버려둔 채 터빈 개수 채우기에만 급급했던 과오를 인정하고, 정책의 무게 중심을 ‘원활한 해상풍력 보급 환경 조성’에 두기로 한 것이다. 재생에너지 속도전을 벌여온 현 정부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정부 스스로 달성 불가능한 목표를 인정하고 비교적 현실적인 방향으로 튼 것은 환영할 일”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하향 조정한 보급 목표 역시 도전적인 수준인 데다 주민 수용성 등 사업 진행을 늦추는 방해 요소가 여전해 정책 추진이 녹록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현재 0.35GW에 불과한 해상풍력 보급 규모를 2030년 10.5GW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전남 영광군 낙월면 송이도 인근 해역에 낙월해상풍력 발전기가 설치된 모습. / 영광=전준범 기자

◇보급 속도전 무리수 인정

기후에너지환경부는 10일 ‘범정부 해상풍력 보급 가속 전담반(TF)’ 2차 회의를 열고 ‘해상풍력 기반시설 확충 및 보급 계획’을 발표했다. 핵심은 배후항만·설치선박 등 해상풍력 건설 전용 인프라를 연 4GW 보급 가능한 수준까지 구축하고 사업자들의 금융 조달을 지원해 현재 0.35GW에 불과한 해상풍력 보급 규모를 2030년 10.5GW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2023년 확정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서 “2030년까지 해상풍력을 14.3GW 보급하겠다”고 했었다. 이때도 정부 안팎에선 “실현 불가능한 수치”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바다 위에 해상풍력 발전기를 박으려면 전용 배후항만과 해상 공사를 주도할 설치선박(WTIV)이 반드시 필요한데, 한국은 이런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터빈을 실어나를 배도 없으면서 보급 목표치만 발표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실제로 국내에는 해상풍력 건설을 지원할 수 있는 항만이 목포신항 단 1곳에 불과하고, 설치선박은 10MW(메가와트)급 2척이 전부다. 해상풍력 선도국에서 쓰는 15MW급 선박은 아예 없다. 여기에 상당수 해상풍력 사업자가 금융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인허가 절차도 복잡하다는 문제가 해상풍력의 저조한 보급률(연간 0.35GW)로 이어졌다. 어민들의 격렬한 반대도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한유진

결국 정부는 올해 초 발표한 11차 전기본에서 해상풍력 목표치를 13.5GW로 소폭 낮춘 데 이어, 이번에 10.5GW로 한 번 더 조정했다. 이 10.5GW에는 막 건설에 ‘착공’한 경우도 포함된다. 실제로는 정부가 보급 목표치를 훨씬 더 낮춘 셈이다. 기후부 관계자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장 과제에 집중하면서 그간 미진했던 부분을 보완하기로 해상풍력 정책 방향을 다시 잡았다”며 “2030년 이후 보급을 본격화할 수 있도록 남은 5년 동안 기틀을 다지겠다”고 했다.

◇배후항만과 설치선박 확충부터

정부는 우선 해상풍력 건설의 핵심 기반시설인 배후항만과 설치선박 확충에 집중하기로 했다. 기존 항만의 기능 조정과 신규 지원부두 개발을 병행해 2030년까지 연간 4GW 처리가 가능한 항만 체계를 구축하고, 민간과 공공 투자를 유도해 2030년까지 15MW급 설치선박 4척 이상을 확보하기로 했다. 또 국민성장펀드와 금융권 공동 출자로 조성한 미래에너지펀드 등을 통한 금융 지원을 검토하고, 보증·융자 한도도 확대할 방침이다.

정부는 복잡한 낙찰사업 인허가 절차를 지원할 ‘해상풍력 발전 추진단’을 신설해 해상풍력 총 사업 기간을 10년에서 6.5년 이내로 단축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인프라 보강과 금융 지원, 사업 기간 단축 등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현재 kWh(킬로와트시)당 330원을 웃도는 해상풍력 발전단가가 2030년 250원 이하, 2035년 150원 이하로 내려갈 것이라는 게 기후부 판단이다.

해상풍력 발전기 설치선박이 발전기를 시공하고 있다. / 삼해이앤씨 제공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보급’에만 집착해온 정부가 비교적 현실적인 방향으로 정책 재설정에 나선 건 환영할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5년 내 10.5GW를 달성하겠다는 수정 목표치가 여전히 도전적이고, 발전단가도 그리 쉽게 떨어지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해상풍력 발전단지는 육지의 다른 발전소들과 달리 주변 지역 주민뿐 아니라 원거리 어민들 반대도 심하다는 특징이 있다”며 “보상이나 수용성 확보 범위가 굉장히 넓다는 점이 실제 사업 추진의 가장 큰 어려움인 만큼 꼼꼼한 정책 설계와 뚝심 있는 추진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