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대 조선사 HD현대가 인도에 사상 첫 한국형 조선소 건립을 추진한다. 삼성전자·현대차 등 국내 주요 기업 100여 곳이 진출한 인도 제조업의 메카 남부 타밀나두주(州)에 K조선 생태계를 이식해 ‘제2의 울산’을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다.

이는 2047년까지 ‘조선업 세계 5위 진입’을 목표로 1300조원 규모의 투자를 예고한 인도 정부의 제조업 부흥 드라이브와, 글로벌 생산 거점을 다각화해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려는 HD현대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인도 정부는 2030년까지 세계 10위, 2047년까지 세계 5위 규모로 조선업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삼고, 파트너로 한국 조선사를 택했다. 이에 국내 최대 조선사 HD현대는 인도 남부에 직접 현지 조선소 건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사진은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해 지난 2024년 인도한 1만 3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 운반선./HD현대

◇현지 조선사 협업 넘어 직접 투자 확대

8일 HD현대는 인도 타밀나두주와 ‘신규 조선소 건설에 관한 배타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타밀나두주는 삼성전자, 현대차 등 한국 간판 기업 100여 곳이 진출해 있는 인도 제조업의 ‘심장’이다.

2023년 말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현재 세계 20위권 밖인 인도의 선박 건조 능력을 2030년 세계 10위권, 2047년까지 5위권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80조 루피(약 1300조원)를 투입해 조선 거점 5곳을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타밀나두주는 이 주요 거점 5곳 중 하나다.

돈과 땅은 있지만 기술이 부족한 인도는 타밀나두주를 조선 허브로 키울 파트너로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HD현대를 낙점했다. 양측은 향후 부지 선정, 보조금 지원, 투자 분담 비율 등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투자 규모가 수조 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인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사업이 속도감 있게 진행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HD현대는 기존 현지 조선소를 개량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새 조선소를 짓고, 현지에 K조선업 생태계를 이식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력 후보지인 투투쿠디 지역은 ‘울산의 쌍둥이’로 불릴 만큼 입지 조건이 좋다고 한다. 대형 선박 건조에 필수적인 깊은 수심과 항만 인프라, 조선업 생산 거점이 인접한 입지에다 연간 강수량이 적어 야외 작업이 많은 조선소 가동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건까지 닮은꼴이다. HD현대는 이곳에 골리앗 크레인 등 핵심 장비를 설치하고, 국내 협력사들의 동반 진출까지 지원해 자재 공급부터 선박 건조까지 이어지는 ‘조선 벨트’를 구축할 계획이다.

◇사우디·필리핀·미국 등 동시 운영은 과제

한국과 인도의 조선업 협력 수준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HD현대의 조선 부문 중간 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7월 인도 최대 국영 조선소 코친조선소와 기술 이전, 공동 수주 등을 포함한 장기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달 초엔 현지 국영 기업 BEML과 ‘크레인 사업 협력 확대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BEML은 건설 중장비 생산 시설도 보유하고 있다. HD현대는 BEML에서 골리앗 크레인을 만들어 인도 현지 여러 조선소에 공급하는 게 목표다.

인도는 200개 이상의 항구를 보유하고 있어 해운 잠재력이 크다. 한국 조선업의 인도 진출로 향후 대규모 수주도 기대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양국의 협력이 강화되면 인도 해군의 군함 사업에도 진출할 가능성이 생긴다. HD현대 관계자는 “인도는 조선 산업에 대한 정부의 육성 의지가 강해 성장 가능성이 기대되는 시장”이라며 “인도와의 조선·해양 분야 협력을 지속 확대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HD현대로선 상이한 노동 및 규제 환경을 가진 국가들에서 수익성과 품질을 모두 성취해야 하는 점은 과제다. HD현대는 지난 9월 필리핀 조선소에 이어 내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합작 조선소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존 베트남 조선소 외에 페루에서도 국영 시마조선소와 함께 호위함 공동 건조를 시작했다. 미국과 마스가(MASGA) 프로젝트에 따라 미 현지 조선소와 공동 건조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