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기밀을 빼돌려서 처벌받은 곳에 ‘수의 계약을 주느니 마느니 하는’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던데, 그런 것 잘 체크하라.”

지난 5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던진 이 한마디가 국내 방산 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방산 비리 근절’ 관련 질문에 답하던 과정에서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에게 당부한 말이었지만, 사실상 특정 기업을 배제하라는 요구였기 때문입니다. 국가 기밀을 빼돌린 기업이 특혜를 누려선 안 된다는 ‘사이다 발언’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대통령이 시스템을 무시한 채 승패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이 대통령이 ‘잘 체크하라’고 한 사업은 약 7조8000억원 규모 미니 이지스함 6척을 건조하는 ‘KDDX’ 사업입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2년 넘게 치열한 수주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설계 단계에선 한화오션이 함정 개념 설계를, HD현대중공업이 그다음 단계인 기본 설계를 맡았습니다.

그간 군함 입찰은 기본 설계 업체가 수의계약으로 ‘상세 설계 및 선도함(1번함)’을 맡았습니다. 사업의 연속성을 보장해 완성도를 높이자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하지만 한화오션이 ‘경쟁 입찰’을 강하게 주장하며 제동을 걸었습니다. 2010년대 중반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KDDX 관련 기밀을 유출했고, 이들이 처벌을 받았다는 이유입니다.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통한 미 군함 사업 확대를 놓고도 경쟁 중인 양사로선 KDDX 사업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양사의 경쟁이 달아오르면서 ‘수의계약이냐, 경쟁 입찰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방위사업청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 전문가들도 2년 가까이 고심을 거듭해 왔습니다.

HD현대 직원들의 행위는 잘못입니다. 다만 HD현대는 규정에 따라 보안 감점을 받았습니다. 소수점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수주전에서 이미 치명적인 족쇄를 찬 셈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발언은 규정에 따른 페널티를 넘어, 아예 ‘링에 오를 자격’ 자체를 박탈하라는 신호로 읽힙니다. 이는 시스템에 의한 통제를 넘어선 ‘제왕적 이중 처벌’인 셈입니다. 벌써부터 업계에서는 18일 예정된 방추위가 대통령의 주문을 ‘복명복창(復命復唱)’하고 끝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