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솅겐 조약처럼 한일간 여권 없는 왕래, 공동 에너지 구매, 의료 시스템 공유 등 구체적 협력 방안을 실험해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회장이 8일 제주에서 열린 한일 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에서 한국과 일본 양국 간 경제협력의 구체적 실험 방안을 제안했다. 밖으로는 급변하는 글로벌 통상 환경과 커지는 중국, 안으로는 저출생·고령화 등 공통 과제를 안고 있는 양국이 경제협력을 통해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일본상공회의소는 이날 제주 신라호텔에서 제14회 한일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를 열었다.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열린 이번 회의에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양재생 부산상의 회장, 박승희 삼성전자 사장, 이형희 SK 부회장 등 한국 측 기업인 16명과 고바야시 켄 일본상의 회장, 기타자와 도시후미 도쿄해상일동화재보험 상담역 등 일본 측 기업인 6명 등 총 22명이 참석했다.
최태원 회장은 개회사에서 “양국이 단순한 협력을 넘어 연대와 공조를 통해 미래를 함께 설계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그간 한일 경제공동체 구축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면 6조 달러 규모의 시장을 창출해 세계 4위 경제 블록을 형성할 수 있다”며 “미국·중국·유럽연합이 각자 경제 블록을 만드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이 협력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양국 상의는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AI·반도체·에너지 등 미래산업이 양국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분야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안정적 투자환경과 공급망을 공동으로 구축하기로 했다. 저출산·인구감소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정책·연구 경험을 공유하고 실질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국교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특별대담에서는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가 진행을 맡고,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교수, 유혁 노무라종합연구소 서울 대표 등이 참여한 가운데 양국 협력 방향을 논의했다. 전문가들은 산업·통상구조 재편 속에서 “규칙을 따라가는 ‘룰 테이커’에서 규칙을 만드는 ‘룰 세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한일 경제연대를 통해 양국이 공동시장으로서 외연을 확대해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