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 KBIZ홀에서‘신보호주의 시대, 중소 성장전략과 대응방안’을 주제로 2025 중소기업 정책포럼에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방준오 조선일보 사장, 김도읍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을 비롯한 주요 내외빈들이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있다. / 고운호 기자

“규칙이 바뀌었다면 대응 방식부터 재설계하라.”

수출 비중이 높은 국내 중소기업계의 위기감이 유례없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주도하는 미국발 신(新)보호무역주의는 거세게 확산하고 있다. 내년 1월부터는 또 다른 주력 시장인 유럽에서 수입품의 탄소 배출량에 따라 일종의 관세를 매기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라는 새로운 무역 장벽이 세워진다.

그러나 2일 조선일보와 중소기업중앙회가 공동 주최한 ‘중소기업 정책 포럼’에서는 글로벌 통상 환경의 격변 속에서도 우리 중소기업이 빠르게 변신한다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미국·중국 등 거대 시장 의존도를 낮춰 신흥 시장을 개척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글로벌 규제에 민첩하게 대응한다면 지금의 위기가 오히려 우리 중소기업들의 체질과 경쟁력을 개선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이날 포럼에선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중소기업인들과 국회·정부 정책 책임자와 학계 인사 등 150여 명이 참석해 ‘신(新)보호주의 시대, 중기 성장 전략과 대응 방안’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신흥 시장·혁신·규제 대응 ‘3대 축’ 동시 가동해야"

주제 발표에 나선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장은 “보호무역주의는 이미 글로벌 경제의 상수(常數)”라며 “중소기업이 통상 불확실성의 중심부에서 살아남으려면 시장을 넓히고, 제품을 고도화하고, 규제 대응 역량을 선제적으로 갖추는 ‘3대 축 전략’을 동시에 가동해야 한다”고 했다.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 KBIZ홀에서‘신보호주의 시대, 중소 성장전략과 대응방안’을 주제로 열린 2025 중소기업 정책포럼에서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 고운호 기자

김 단장은 “미국·중국 중심의 공급망이 흔들리는 지금이 특정 시장 의존도를 낮출 절호의 시기일 수가 있다”며 중소기업들이 동남아·중동·중남미 등 신흥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를 적극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신흥 시장은 초기 개척 비용이 크고 정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중소기업이 주저해왔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기회가 남아 있다”고 했다.

예컨대 베트남·인도네시아는 성장 잠재력과 한류 소비 기반을 동시에 갖춘 지역이고, 중동은 인공지능(AI)·에너지 전환·스마트시티 등 초대형 인프라 투자를 바탕으로 프리미엄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단장은 “중남미는 자원 부국의 구매력과 제조업 협력 여지가 크다”면서 “정부의 해외 전시회·바이어 매칭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해 시장을 직접 확인하고, 위험을 분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술 개발과 품질 경쟁력 강화도 핵심 축이다. 김 단장은 “각국의 관세 장벽, 환경 규제가 높아질수록 ‘메이드 인 코리아’란 품질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며 “여기에 IT 기반 스마트 공정, 친환경 공정 등을 적극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 글로벌 표준을 선도하는 기업이란 점을 앞세워야 한다”고 했다.

세 번째 축은 규제·인증의 선제 대응이다. 국가별 안전·위생·환경 인증 강화는 중소기업에 작지 않은 부담이지만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오히려 선제 대응해 시장을 선점하는 전략이 먹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와 기업이 함께 준비한다면 부담을 줄이며 경쟁자들을 앞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환경·종교 등 ‘숨은 무역 장벽’까지... “정부 지원 절실”

주제 발표에 이은 토론에서는 기술력은 있지만 자본과 인력이 부족해 각국의 규제에 일일이 대응하기 힘든 중소기업들의 호소와 제언이 쏟아졌다.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 KBIZ홀에서‘신보호주의 시대, 중소 성장전략과 대응방안’을 주제로 열린 2025 중소기업 정책포럼에서 종합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전대규 투데이아트 대표, 이영주 칠갑농산 대표, 오원현 세인아이엔디 대표이사, 진병채 중소기업학회장.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장, 이순배 중소기업벤처부 글로벌성장정책관,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 / 고운호 기자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세인아이엔디의 오원현 대표는 당장 내년 1월 시행될 EU(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대한 막막함을 토로했다. CBAM은 철강·시멘트·알루미늄 등 탄소 다배출 품목이 포함된 제품들을 수출할 경우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 정보를 의무적으로 현지 수입 업자에게 제공하도록 하는 제도다. 오 대표는 “완제품 수출 기업이 원재료 생산부터 가공까지 모든 단계의 탄소 배출 데이터를 모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탄소 배출량을 입증할 수 있는 ‘정부 주도 통합 데이터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면·떡류 제조사 칠갑농산의 이영주 대표는 종교나 문화, 위생 민감도 등이 국가별로 다른 것도 중소기업엔 일종의 장벽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수출 다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어떤 나라에선 동물성 원료가 없는 제품뿐 아니라 포장지까지 할랄 인증(이슬람교도가 먹고 쓸 수 있음을 보증하는 제도)을 요구하는 게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K푸드 수요가 높아지는 만큼 국가별로 천차만별인 알레르기·원산지 표기 기준 등을 자동으로 알려주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을 정부가 개발해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