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출범 후 첫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수립 작업에 공식 착수했다. 전기본은 안정적 전력 수급을 위한 정부 차원의 중장기 종합 계획이다. 현 정부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석탄발전 폐지를 앞세워 전원 믹스를 무탄소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기업들은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원전·가스·석탄 등 기존 기저 발전원의 역할 축소로 전력 공급의 안정성이 저하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전 정권 시절 확정했던 신규 원전 2기 건설 계획이 유지될지도 관심사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명분이 현실적 수급 대책보다 위에 군림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 “재생에너지 확대, 석탄발전 폐지 구체화”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7일 서울 여의도 한국전력 남서울본부에서 전력정책심의회를 열고 제12차 전기본 수립 계획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전기본은 우리나라의 중장기 전력 수급 안정을 위해 2년 주기로 내놓는 종합 계획으로,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이 전력 수요를 전망해 향후 15년간의 전력 설비 및 전원 구성을 설계한다. 이번 12차 전기본의 계획 기간은 2026년부터 2040년까지다.
기후부는 12차 전기본에 대해 “탄소중립, 공급 안정성, 효율성 등을 고려한 무탄소 중심의 전원 믹스를 도출할 것”이라며 “특히 재생에너지 확대, 석탄발전 폐지 등 새 정부 국정 과제를 구체화하고, 전환 부문 탄소중립에 도달하기 위한 2040년까지의 경로를 제시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날 착수 보고를 시작으로 정부는 12월 초 12차 전기본 총괄위원회를 개최하고, 분야별 전문가위원회를 통해 주요 과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후 전문가위원회에서 도출한 초안을 바탕으로 전략환경영향평가 등 관계부처 협의와 공청회, 국회 상임위 보고, 전력정책심의회 심의 등을 거쳐 12차 전기본을 확정하게 된다. 모든 작업은 내년 하반기쯤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12차 전기본이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처음 수립되는 계획인 만큼 11차 전기본과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올해 2월 여야 합의를 거쳐 신규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 신설 계획이 담긴 11차 전기본을 확정했다. 그러나 이후 4개월 만에 정권이 바뀌었다.
현 정부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대전환, 탈석탄 가속화 등을 선언하고 원전 산업에 대해서는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에너지 정책 기능도 기존 산업통상자원부(현 산업통상부)에서 환경부로 이관해 기후부를 신설했다. 기후부는 최근 전기본 수립의 바탕이 되는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도 2018년 대비 53~61% 감축으로 확정했다.
◇ “특정 이념에 치우친 전기본 만들어선 안 돼”
이렇다 보니 에너지 전문가들은 12차 전기본이 ‘재생에너지 속도전’ 중심으로 수립될 것으로 본다. 11차 전기본에선 2023년 30GW(기가와트)이던 재생에너지 용량을 2035년 107.8GW까지 늘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현 정부는 재생에너지 100GW 돌파 시점을 2030년으로 5년 앞당긴 상태다.
석탄발전도 기존 계획에서는 61개 발전소를 수명 만료 순서대로 닫아 2038년까지 총 40기를 폐지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석탄발전을 2040년 폐지하겠다고 국정 과제에 못 박았다. 이 목표에 맞추려면 12차 전기본에는 탈석탄 목표치도 보다 공격적으로 담길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에너지 업계와 학계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AI 시대가 본격화하는데도 안정적 전력 공급에 필수적인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해줄 가스·석탄 등에 대한 현 정부 태도가 너무 비판적이란 이유에서다. 11차 전기본 당시 확정했던 신규 원전 2기 건설 계획이 유지될 수 있을지도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발전원별 특징이 다른 만큼 에너지 수급 종합 대책은 모든 전원을 합리적으로 조합해야 한다”며 “특정 이념에 치우친 편협하고 달성 불가능한 계획을 국민 앞에 선보여선 안 된다”고 했다.